딸아이가 무를 뽑아왔다
유치원 체험학습
달력에 파란색 동그라미와 함께 '무밭'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장모님, 무밭이 뭐예요?"
"유치원에서 무 뽑으러 간대"
체험학습이다. 요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종종 체험학습을 한다. 자연 속에서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며 배우는 체험학습은 참 괜찮은 교육이라 생각한다.
나도 어릴 때 유치원에서 고구마를 캤던 적이 있다.어린 나이에 신기하고 즐거웠다. 그런데 무를 뽑는 것은 처음 듣는다.
"애들이 무를 뽑을 수 있을까요?"
"그러게 힘들 텐데.."
'단단하게 얼은 땅에 박힌 무를 뽑을 수 있을까?'
'넘어지거나 옷을 다 버리는 것은 아닐까?'
'괜히 추운 날씨에 감기 걸리지 않을까?'
혼자서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드디어 무를 뽑아왔다
딸아이가 무를 뽑으러 간 날. 나는 야근을 했다.
"깨톡" , "깨톡"
업무에 지친시간, 아내가 사진을 보냈다. 자기 머리 두 개 만한 무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딸의 사진이다. 퇴근하니 아내가 들뜬 얼굴로 무를 내밀며 자랑한다.
"자기 반에서 제일 큰 걸 뽑았대"
"저걸 직접 뽑았다고?"
어른이 들어도 묵직한 무를 뽑아왔다는 것이 대견했다.
"큰 것을 뽑은 이유가 참 예뻐서.."
"이유가 뭔데?"
"가족들과 다 같이 나눠먹어야 해서 큰 걸 뽑아야 한다고, 이 큰 걸 낑낑대면서 뽑고 있더래"
"기특하네"
아이가 가져온 무로 만든 밥상
다음날 아침 밥상에 딸아이가 뽑은 무로 만든 무채와 무를 넣고 시원하게 끓인 오징어국이 올라왔다.
무채를 집어먹고, 오징어국을 한 숟갈 떠먹으니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아침부터 혼자서 실없이 웃고 있자니, 아내가 걱정이 되나보다.
"여보 왜 그래? 많이 힘들어?"
"아니, 아기 같은 녀석이 가져온 걸로 반찬을 해서 먹으니 기분이 좋아서"
그날 유난히 맛있는 아침밥을 먹었다. 이거면 직장생활 견뎌낼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 힘이 난다^^
※ 어릴 적 어버이날에 아버지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렸습니다. 아버지가 퇴직하실 때 집으로 카네이션을 몇 개 가지고 오셨습니다. 이제 그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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