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남자가 돌아본 명절

나도 어른이 되어가는걸까?

by 슈밍아빠

결혼 후 11번째 명절을 맞이했다.

이번 명절은 유난히 짧다. 실제 연휴가 4일 밖에 안되었고, 며칠간 아파서 드러누운 탓도 크다. 누워있는 동안 지금까지 보냈던 명절들을 떠올려보았다.



1) 초등학생때까지

명절은 설레고 즐거웠다. 할머니댁은 바닷가에 있었다. 갯바위틈을 휘저으며 손가락 두마디만 한 게를 한 바가지씩 잡았다.


나는 집안에서 가장 개구쟁이였다. 부모님과 친척 어른들은 내 이름을 연신 불러댔다. 깔깔거리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고, 땅에 두발이 온전히 붙어있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뛰어다녔다. 맛있는 음식이 많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명절만큼 신나는 날이 없었다.



2) 고등학생때까지

"공부 잘하냐?" "공부 열심히 해야한다"

어른들은 근엄한 표정으로 공부를 강조했다. 부담스러웠다. 연휴가 다가오면 잠깐 차례 지내고 도서관이든 어디든 틀어박혀서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실은 튀김 먹고, 사촌들과 번화가 구경을 다녔다. 오락실, PC방, 패스트푸드점을 순례했다. 세뱃돈도 두둑히 받았겠다. 명절 분위기 나겠다. 기분 내고 실컷 놀았다. 가방 한가득 싸온 책들은 열어보지 못했다. 매번 후회 가득하지만 재미있는 명절이었다.




3) 대학생에서 취업전까지

어른들의 조언이 다양해졌다. "좋은 곳에 취업해라" "착한 여자 만나라" "공무원이 최고다"


하지만 공부해라 잔소리보다 더 와닿지 않는다.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막연한 조언은 반발심을 키웠다. 알아서 할껀데.. 간섭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해보니깐 이런 일이 좋아"라는 조언은 없다. 막연히 '공무원 좋아', '전문직 되라'는 말은 오히려 생각을 삐딱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좋으면 어른들은 왜 안했어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삼켰다.


정치/경제 이야기는 어른들과 충돌이 일어나기 쉬운 주제다. 다양한 경로로 정보를 접한 청년들과 신문과 뉴스로만 정보를 습득한 어른들의 입장은 차이가 난다.


'요즘 애들은 다 저렇게 생각해'

'어른들은 알지도 못하면서'


태블릿PC는 어른들에게 어렵지만, 4~5살 아이들에게는 익숙하다


우린 어른들의 시대를 살아보지 못했고, 어른들은 우리가 접하는 다양한 채널의 정보를 접하지 못했다.

입장이 다른 것은 단지 그 차이일 뿐이다.



4)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직장인이 된 후

어른들이 살아온 과정이 존경스럽다. 지금보다 열악하고 어려운 여건속에서 직장생활하고 자식들을 키워냈다. 자라면서 흘려버렸던 잔소리가 와닿기 시작한다. 이미 늦은 것도 있지만 아직 유효한 것도 있다.


어른들의 입장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나도 어른이 되어가기 때문일까?


어른들은 몰랐을까? 어떤 것이 좋은건지..

어른들은 없었을까? 이루고 싶었던 꿈이..


가정을 지키고 자식을키우기 위해서 접어버린 꿈도 있고, 삼켜버린 욕구도 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라고,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 이제 듣기 싫은 잔소리, 틀렸을지 모르는 주장도 웃으면서 받아드릴 줄 알아야 할 시기다.




언제부터인가 부모님에게서 주름살과 흰머리를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내 마음속의 부모님은 아직 젊고 건강한데.. 갑자기 마음이 서글퍼졌다.


우리가 누리는 혜택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공짜로 얻어낸 것도 아니다. 어려웠던 시대를 잘 살아낸 부모님들이 있었기에 자식들이 더 나은 시대를 살 수 있다. 현재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비웃거나 외면하지 말자.


앞으로 보낼 명절에는 어른들이 살아왔던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려한다. 그 속에서 부모님이 추억과 젊음을 잠시나마 웃음과 함께 떠올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말 잘 살아오셨어요. 앞으로도 건강하게 함께 잘 살아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 명절 보내신다고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일상으로 돌아가서 다시 힘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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