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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갑부훈 Sep 12. 2021

개새끼와 돌담

내가 제주도에 버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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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게스트하우스에서 하우스콘서트를 하고 있었다. 공연장은 게스트하우스 부속 건물인 여섯 평 남짓 작은 카페 공간, 숙박 손님들과 동네 주민분들이 관객으로 모여 앉은 가운데, 나와 호흡을 나란히 하며 귀보다 먼저 눈으로 노래를 듣던 열여 서일곱 정도 되어 보이는 아주 앳된 소녀에게 눈길이 갔다. 아이는 공연 내내 내게서 시선을 한 번도 돌리지 않았다. 그 눈빛은 분명 메시지였다.


<나는 당신에게 반했어요>


나 혼자 초조해하며, 노래 가사를 읊는 입은 자동재생시켜놓고서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얘 마음을 다독여 돌려보내야 할까>


공연이 끝이 났다. 아니라 다를까 소녀는 발그레한 얼굴로 내게 다가와 둘이서 잠깐 이야기 나누고 싶다 말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아이의 뒤를 따라 카페 밖으로 나갔다. 12월의 추운 겨울이었다. 두 손으로 옷깃을 여미며 아이는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마워요, 내 인생 마지막으로 듣는 노래가 그저 슬프지 않아 다행이에요. 저는 이번 제주 여행에서 죽기로 결심했어요>


그리고 아이는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 사건과 사고들을 내게 유언처럼 털어놓았다. 이 모든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나서 나는 감히 <죽지 마>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이 모든 일들이 법치국가인 이 나라에서 정녕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싶을 만큼 10대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겁고, 잔인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청년 사망률이 교통사고보다 3배 이상 높다는 통계가 있다. 통계 속으로 사라진 내 주변의 몇몇 친구들처럼 내 눈앞에 있는 이 아이도 이제 통계 속의 숫자가 되려 한다.


죽고자 하는 이를 구원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그것은 호기심이다. 나는 소녀에게 말리지는 않을 테니, 죽기 전에 책 한 권만 읽고 죽는 것이 어떠냐 제안했다. 그리고 파울로 코엘류의 소설 하나를 건넸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했다>

 

베로니카는 왜 죽기로 결심했을까? 그 아이가 죽기로 결심한 이유를 듣고 나서 죽어도 그렇게 늦지는 않으니, 한번 들어나봐. 베로니카는 왜 죽기로 결심했는지.


다행히 며칠 뒤 소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삶의 끝에 위태롭게 선 한 슬픈 영혼의 목소리는 열일곱 소녀로 되돌아와 있었다. 한 고비는 넘긴 듯했다.


이제는 아이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줄 차례다.


<쉬리야 난로한테 전화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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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난로 같은 친구가 있다.

 

사랑하는 법보다 계산하는 법이 익숙해져 어느새 내게 태초에 우주가 물려준 자연스러움은 온데간데없고, 옹졸한 헛똑똑이 하나만 남아 외로움에 벌벌 떨고 있었을 때, 그는 내게 난로가 되어 주었다. 난로의 온기는 외로움에 딱딱히 얼어버린 내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천천히 스르륵 녹였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을 언어 밖으로 조형해내는 마법을 부리는 사람.

그것은 한순간 눈을 속이는 마술이 아니라, 진짜 마법이다.

 

<사랑이 필요한 아이 하나 보낼 테니 듬뿍 채워 보내줘>


다음번 만난 소녀는 죽음 대신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나는 처음부터 참아온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시작했다.

 

“제주에 들어와 처음에는 땀 흘리는 여러 육체노동을 했어. 그중 돌담 쌓는 일을 배울 때의 일이야. 들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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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 조캐, 여기 큰 돌과 잔돌이 있다. 어떵 쌓을 건지 고라보라>


대장이 내게 물었어. 그리고 잠깐 고민하다 그가 원하는 답을 찾지 못하고, 내가 생각했을 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이야기했지.

 

<맨 아래 육중한 큰 돌을 놓고, 그 위로 크기에 따라 잔돌을 쌓아 올리면 안 되나요>


그리고 대장은 이렇게 말했어.


제주 전통 방식의 돌담 쌓기는 
아래에는 잔돌이 조밀하게,
서로 단단하게 끌어안도록 쌓아야 .
태양 아래 자라는 모든 것들은 뿌리가 깊고 튼튼해야 해. 고로 나를 믿어주는 . 그것은 마찬가지로 사람이 뿌리내리는 방식이지.

담의 위는 어떤가,
큼직하고 모난 돌들을 성글게 쌓아 일정하지 않은 구멍을 만들어 두었어.
외부의 호기심과 낯선 이의 접근을 차단하지 못하는 담이라고 누군가는 비웃을 테지만, 돌담은 그곳으로 바람을 흘려보낸다.
제주의 거센 바람에 호기롭게 맞서 무너지지 않으려면 유연해야 한다.

어떤 풍진 감정이 자신에게 들이쳤을 ,
어떤 것과는 싸우고,  어떤 것은 재빨리 
흘려보낼  있는 유연함을 가져야 한다.

적게는 수천년 하지만, 얼마나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봐라. 조롱하던 이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고, 돌담은 여전히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단단히 믿는 견고함과, 유연함을 두른 것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아무렴 무너지지 않고말고.




개새끼
작사작곡_ 제주갑부훈

힘든가요, 슬퍼 우나요, 그 개새끼가 당신 화나게 했나요
외로운가요 기대고 싶죠
하지만 그녀는 무정히 떠나갔네요
아파요 세상 사는 게 탐탁지 녹록지 않아 초라해져요
알아요 죽고 싶죠 하지만 그때야 비로소 물을 수 있죠

나는 얼마나 강한가 견뎌낼 수 있는가
나는 얼마나 강한가 이겨낼 수 있는가

사는 게 신이 나는 건 감정이 있어서라더라
어제 읽은 책에선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더라
바람에 맞서지 않고 흘려보내는 견고한 돌담의 유연함 같이
숨 크게 세 번 쉬고 내 자유가 날 반기는 남쪽 섬을 찾아 떠나
어느새 그렇게 내 감정은 더 이상
화가 아닌 기억으로 추억으로 변해있으리라

그 언젠가 사라질 감정들 그것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나
그 언젠가 사라질 감정들 그것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나

미움도 슬픔도 외로움도 사라져 사라져 가네
미움도 슬픔도 괴로움도 사라져 사라져 가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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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의 가사는 괴로움이 많은, 버릴 것이 많은,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여행자들과 나눈 이야기를 한 데 모아 만들었다.


괴로워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다 생각들 때, 부디 조금만 더 견뎌주라, 버텨주라.

게으른 이 노래가 네게로 가고 있다.



https://youtu.be/wjlHDedTRZU

<제주갑부훈 세번째 ep앨범 수록곡 ‘개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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