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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굴 Feb 07. 2022

[낙서03] 확신의 밴드, 엔플라잉

진짜가 나타났다. / 맨 온 더 문


그들은 늘 답을 줬다.
엔플라잉을 좋아하는 이유다.




지난여름 울산에 출장을 갔다.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올라가던 길, 문득 스스로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물여섯. 누군가는 한창 취직을 해서 주임을 달 나이, 또 다른 누군가는 열심히 시험에 매진하고 있을 나이. 혹은 자유롭고도 불안한 마음을 마음껏 펼치고 있을 나이. 그렇게 지난해, 결국 두 번째 퇴사를 했다. 후회의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리라. 하지만 꽤 자주 잠을 뒤척였고 때때로 사나운 꿈을 꾸다 깨곤 했다.   


사회인이 되고 나니 힘든 일들이 참 많았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인간관계가 그랬고 욕심만큼 채워지지 않는 업무 능력이 그랬다. 몰아치는 일로 밤을 꼴딱 새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나’였다. 하루 걸러, 하루 지나. 늘 새로운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시간에 치여 바쁘게 살다 보니 미처 답을 내리지 못한 채 마음만 복잡해져 갔다. 이내 무엇 때문에 심란한 지 조차도 모를 정도로 흐린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안개를 걷어내고 싶었다.

1. 지금 나는 어떤가?

지쳐있고, 힘들고, 고되다. 참 추상적인 말들의 나열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들이 행복과는 거리가 먼 감정들이라는 것이었다.

2. 1년 뒤에 어떻게 살고 싶은가?

적어도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3.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면 행복할까?

글쎄…

이 질문들을 정리하는 데만 3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답은 찾지 못했다.



코로나19 이후 공연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 가수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환호가 박수로 바뀌었다. 관객들이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찬사 역시 박수가 되고 말았다. 지난 주말, 관객의 환호성 없는 콘서트가 열렸다. 밴드 ‘엔플라잉’의 단독 콘서트. 3년 전, 학교 축제에서 처음 그들의 공연을 봤던 순간, 19년도의 무기력했던 나는 당시 그들을 통해 자연스레 번아웃을 극복할 수 있었다. 또래의 청년들이 무대가 부서져라 뛰어다니며, 실제로 드러머는 스틱을 부러뜨리기도 했다, 20분 남짓 시간을 말 그대로 불태우는 모습이 꽤나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한 번쯤은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땀이 있어야 진짜지”

<진짜가 나타났다>는 곡을 마친 직후, 엔플라잉 리더가 했던 말이다. 순간 팔이 떨어져라 응원봉을 흔들다 잠시 온몸이 얼어버렸다. 찰나의 순간, 머리가 맑아졌다. 의외의 곳에서 오래 찾아 헤맸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19년도의 그들이 열정적으로 사는 삶의 매력을 몸소 보여줬다면, 22년도의 그들은 행복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줬다.

 

적어도 내 눈엔, 이 순간에 집중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면 행복할까?”

사실 대부분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를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찾기부터 어렵거니와 찾더라도 업으로 삼기까지 갖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을 감수하더라도, 기꺼이 웃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일에 대한 애정이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연예인은 누군가의 별이라고 한다. 단지 그들이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아 빛나기에, 하늘 높이 떠있기에 별이 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아주 오래전, 나그네들은 길을 잃었을 때 밤하늘의 별을 보며 길을 찾아갔다. 사방이 뚫려 어쩌면 발 닿는 모든 곳이 길일 지도 모르는 상황. 희망적이면서도 오히려 너무 열려있어 혼란스러운 밤, 나그네들을 이끌어주는 건 단 하나의 별이었을 것이다.

별은 직접적으로 길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다만 어둠을 비춰줄 뿐이다. 그 빛이 무대의 핀라이트처럼, 누군가의 인생에 핀라이트가 될 수 있다. 엔플라잉은 내게 그런 가수다. 길을 걷는 것은 당연히 내 몫이겠으나 방향을 잡아준 것은 그들이다. 내가 엔플라잉을 좋아하는,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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