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여행이 무얼까 생각한 날들이 있었다. 어느 날 그것이 희망과 나 사이의 간격을 줄여가는 여정이라 적었다. 여행의 날들이 쌓여 희망의 탑에 가까이 다가서리라 믿었다. 볼 수 있다는 사실보다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여행을 만드는 것처럼, 오늘 하루 삶이 보이지 않고 행복이 보이지 않고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만으로 내가 딛고 있는 땅과 내 곁의 사람과 오늘을 아껴 사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믿는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어느 날 갑작스레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불과 열흘 상간이었다. 이별이라는 걸 깨닫기도 전에 작별은 끝나 있었다. 그러자 세상은 예상하거나 예감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찼다. 마음은 늘 이별 태세였다. 그러니 여행이 무슨 소용일까? 사람은 이처럼 홀연히 떠나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한 동안 슬픔을 견디려 자꾸 떠났다. 혼자 떨어져 걷기도 하고, 침묵하며 다른 이의 삶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가끔은 말을 걸어 그들의 슬픔을 물었다. 사정을 알지 못하는 타인과 있을 때 내 슬픔은 소심하게 잦아들었다.
그리 한참을 지나고 나니, 이유를 알지 못하던 지난 이별들과 후회로 남은 사랑들마저 하나둘씩 받아들일 수 있었다. 떠남에 목표가 있지 않듯 헤어짐은 처음부터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은 아니었다. 그저 놓아 보내는 마음이었다. 사랑은 그렇게 슬픔 속에서 묵묵히 앞을 향해 나아가는 여행이었다.
그 사실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과 여행하며 깨달았다. 여행은 멀리 가는 게 아니라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저 당신과 소소하게 여행하는 걸 행복이라 여긴다. 자주 발을 맞춰 걷는 하루하루. 정의하는 것이 아닌 나란히 살아내므로 정의되어 지는 날들의 이야기.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일, 그 관계의 사연 안에서 생각의 자국을 살피는(사색하는) 일, 사소한 내가 소중해지는 경험. 또 한참이 지난 어느 날 그게 사랑이었다는 걸 알게 되겠지. 여행이 일상에 속할 때 더 깊어지듯, 사랑이 보이지 않을 때는 맞잡은 손이 희망이 될 테니까
우리는 그로 인해 좀 더 다정하게 여행하고 좀 더 절실하게 사랑해야 할 이유를 찾아낼 것이다. ‘어딘가’가 아닌 ‘누군가와’라는 여행의 비밀은 ‘멀리’보다 ‘가까이’에 있다. 그것이 내가 여행에게서 배운 사랑의 뻔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