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이채훈/혜다)
스타필드 수원 별마당도서관이 화제입니다.
22m 의 웅장한 서고가 감탄을 자아냅니다.
쇼핑몰 한가운데 도서관이 들어서는 건 참 반가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이를 ‘기적’이라 부르지는 않아요.
인제기적의도서관은 열일 곱째이자 강원도의 첫 기적의도서관입니다.
인제기적의도서관은 지난해 6월 문을 열었습니다. 개관 6개월 만에 5만 여명이 다녀갔어요. 인제군 인구는 2024년 1월 기준 3만 2004명이죠. 기적의도서관은 2003년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이 MBC프로그램 ‘느낌표’와 시작한 어린이전문도서관 건립 사업입니다.
젊은 유재석이 ‘책!책!책!을 읽읍시다,라고 외치던 장면 기억나시나요?
https://www.youtube.com/watch?v=kuH5Sn7ViUo
당시 ‘느낌표’는 추천도서를 선정했고 그 판매수익이 기적의도서관을 짓는데 사용되었지요. ‘느낌표’가 막을 내리며 기적의도서관 사업도 끝났다 생각하셔겠지만 무려 21년째 진행형입니다. 인제기적의도서관읜 그 열일곱 번째이자 강원도의 첫 기적의도서관이고요.
인제기적의도서관은 세 가지가 흥미롭습니다. 먼저 건축입니다. 이건 기적의도서관의 특징이기도 하죠. 설립취지 가운데 ‘건축 부분에서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델의 공간구조’를 가진 도서관을 짓는다는 목표가 있었으니까요. 그 첫 출발점인 순천기적의도서관은 고 정기용 건축가가 설계했어요. 지금 봐도 이전과는 다른 형식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그 후로도 줄곧 지켜져 오는 원칙입니다.
인제기적의도서관 설계는 이상윤 건축가의 재능 기부로 이뤄졌습니다. 건물은 가로가 긴 직육면체 가운데 낮은 원통을 겹쳐놓은 형태입니다. 원통은 종합자료실과 동아리실, 스튜디오 등이 모여 있는 도서관의 심장이죠. 건물 좌우 날개 역할을 하는 직육면체 공간은 갤러리복도를 따로 이동하고요. 그 건축 공간의 가치는 2024한국문화공간상 도서관 부문 수상으로 이미 증명됐습니다.
특히 2층 원형 서가에서는 누구라도 잠깐 멈춰 서기 마련입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열린 구조로 가운데 계단식 열린극장과 열람석이 지하 1층에서 2층까지 공간의 축을 만들며 개방감을 이끌어요 좌우로는 신전처럼 높은 기둥이 일렬로 도열하죠. 스타필드 수원 별마당도서관의 절반 높이 밖에 되지 않는 11.55m이지만 그 못지않게 웅장합니다.
또 종합자료실이 있는 원형의 홀은 투명한 지붕으로부터 자연광이 넉넉히 스밉니다. 그래서 인제기적의도서관은 인공조명이 많지 않아요. 햇살을 빌려 읽는 책들은 활자에 생기를 불어넣고 읽는 이의 상상으로 피어납니다다. 그래서 인제기적의도서관 슬로건이 ‘시간을 넘어 무한한 상상’인지도 모르겠네요.
두 번째는 청구기호가 없는 책들입니다. 요즘 도서관은 바닥에서 천장까지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인테리어 서가가 눈길을 끕니다. 위쪽은 대부분 책 표지가 붙은 플라스틱함을 두죠. 안전상의 이유도 있겠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웠어요.
인제기적의도서관은 그 자리를 지난 10년간의 세종도서(선정작과 후보작)로 채웁니다. 세종도서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추천 도서입니다. 진흥원에서 보관하고 있던 책들을 기증받았어요. 낡고 바랜 책은 손 닿지 않는 위치지만 온전한 종이의 책으로 자리해 반갑습니다. 그 목록만으로도 의미가 있고요.
그러다 불쑥 끼어드는 몇몇 문장들 앞에서 또 걸음을 멈춥니다. 정수기 옆에, 2층 인제니아 뒤편 벽에, 알콩달콩열람석 등받이에 숨은 그림처럼, 아마 마저 찾지 못한 숨은 문구가 더 있을 거예요.
책 읽어라 그래야 잔소리 안 듣는다. 정예원 2023.2.16
굳게 닫힌 책은 냄비 받침에 불과하다. 차정민 2023.1.31.
이 말들의 주인공인 정예원과 차정민은 누구일까요?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이름입니다. 그럴 수밖에요. 예원과 정민은 인제에 사는 중학생입니다. 인제기적의도서관은 건립 과정에 청소년준비단이 참여했습니다.
동아리 스튜디오의 이름과 테마 색깔도 그들이 정했습니다. 위대한 작가들과 어깨를 견주는 ‘명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자리에 남겨져 방문자를 마중합니다. 나중에 예원이나 정민이 부모가 돼 아이와 다시 찾는다면, 이 글귀는 그에게 기적의 조우와 다름 아니겠죠? 그래서 또 한 번 기적의도서관을 체감합니다.
<소설처럼 아름다운 이야기>(이채훈/혜다)
예술갤러리 서가에서 음악 책 한 권을 챙겨들고는 계단 열람석으로 이동합니다. 커다란 강의실 같기도 한 자리는 이국의 도서관을 닮았습니다. 파르테논 신전이나 콜로세움도 생각나네요.
얼간은 긴장을 푼 채로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서가를 마주합니다. 책의 신전이지만 책을 다투지 않는 시간이 좋습니다. 그리고 나의 ‘조용한 동행’들 곁에서 책장을 넘깁니다.
오늘 고른 책은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이채훈/혜다)’입니다. 손끝의 감각만으로 펼친 페이지 속에는, 모차르트와 클레멘티의 피아노 대결이 등장합니다.
작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곡을 해석한 모차르트와, 작곡자의 의도대로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준 클레멘티의 연주를, 2016년 성남아트센터에서 있었던 53개의 손가락을 가진 로봇과 인간 피아니스트의 대결에 비유해 피력합니다.
언어의 한계 때문에 우리는 예술을 사랑하는 것이다.
한계라는 단어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조선 백자는 완벽한 대칭이 아닌 형태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 있다 말하죠. 인간의 한계가 만들어낸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표현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언젠가 도서관 서가에도 종이 책 대신 테블릿이 대체할까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책의 각 단락에는 주제에 해당하는 클래식 음악을 QR코드로 소개합니다. 모차르트 에피소드에는 피아니스트 막달레나 바체프스카가 연주한 모차르트의 ‘반짝반짝 작은 별’ 변주곡이 실렸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cmmc-_bfGo
에어팟을 끼고 살짝 볼륨을 높입니다.. ‘반짝반짝 작은 별’이 흐르는 도서관은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의 풍경입니다. 각자로서 책 한 권을 마주하지만 책이라는 대자연이 주는 일체감은 종이의 질감처럼 쉬이 떨칠 수 없는 도서관의 매력이네요. 올리버 색스가 말한 *‘조용한 동행’의 순간이 한 번 더 반짝입니다. 이곳의 ’모든 것은 (온전한) 그 자리에’ 있습니다.
* 인제 기적의도서관 홈페이지는 매일 ‘오늘 마주친 한 구절’을 제공합니다. 이날은 ‘모든 것은 그 자리에’(올리버 색스 지음, 알마)의 한 구절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2018년 ‘뉴욕타임스’에 “삼청공원 숲속 도서관에서 혁신의 미래를 보았다”라고 기고했던 바로 그 작가의 책입니다.
나는 도서관에서 자유를 만끽했다.
수천 권, 수만 권의 책들을 마음대로 들여다보고, 마음대로 거닐고,
특별한 분위기와 다른 독자들과의 조용한 동행을 즐겼다.
※ 이 글은 제가 서울신문에 기고 중인 박상준의 書行(서행)에서 일부 발췌 후 편집했습니다.
※ 전문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https://www.seoul.co.kr//news/plan/travel-story-psj/2024/02/23/20240223014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