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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기록] 정음(正音): 소리의 여정

소리를 기록하다

by 김태현

제대로 듣기


시각, 미각에는 그렇게 진심이면서 청각에는 진심인 적이 없었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화면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되는 쇼츠와

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액션영화가 그렇게 좋았다.


흑백요리사 이후에는 먹는 것에 진심이어야 한다면서

찐 맛집을 거리에 상관없이 찾아다녔다.


듣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고, 술 마신 다음 날 소음이 싫어서 자동차 소리가 안 들릴 때까지 걸어 다니거나 동네 뒷산에 올라가서 소리가 없는 시간을 찾은 게 다였다.


제대로 듣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관심이 있어야 한다.

관심이 없다면 시간을 들이지 않을 것이고 집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보려면 시간을 들여 오래 봐야 하고 관심을 갖고 멀리 가야 한다.

관심을 갖게 되면 다양하게 보게 되고 많이 보게 된다.

다양하게 보면 식견이 넓어지고 많이 보게 되면 안목이 생기게 된다.


나는 제대로 들을 수 있을까?




오래된 것은 안 좋은 것이다?


요즘에는 새로운 것들이 하루에도 셀 수 없이 튀어져 나오고,

며칠 혹은 몇 시간만 지나도 옛날 것 그리고 낡은 것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옷만 하더라도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로 신상을 출시하고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SS/FW로 나누어 신상을 론칭한다.

한 시즌만 지나도 지난 스타일로 만들어버리고 몇 번 입거나 신지 않았어도 1년만 지나면 트렌드에 뒤쳐지는 아이템으로 전략해 버리는 시대다.


기업들은 더 많이 팔기 위해 제품의 수명을 짧게 그리고 더 짧게 만들고,

더 새로워질 것이 없음이 분명한데 매년 아주 작은 변화만 주어 신제품을 출시한다.

10년을 쓸 수 있어도 1년이 지나면 오래된 것으로 간주를 하고,

오래된 것은 안 좋은 것이라는 무의식을 심는 광고와 홍보를 24시간 하고 있다.


하지만 소리와 소리를 전하는 음향기기는 오래된 것이 안 좋은 것이 아니었다.

오래되더라도 소리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 자체는 독보적이고 특별하게 남아 있었다.

기술이 발전하고 새로운 형태로 발달이 되어 최신 소리와 최신 음향기기가 판을 쳐도 옛날의 소리는 마치 "너와 나는 종자가 달라"라고 말하듯이

독특함을 가지고 있었고 만들어진 의도에 따라 자신만의 소리를 담아내고 있었다.


어쩌면 유일하게 '오래된 것도 좋은 것이다'를 보여주는 사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직 소리와 음향기기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지금부터라도 이렇게 특별하고 소중한 '좋은 소리'를 더 발견하고 싶었다.

또 오래되어도 좋은 소리로 느껴지는 것처럼, 나 또한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어서 삶의 여전에 있어서 '오래'되어도 좋은 어른, 더 나아가서 더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KCC회장님의 클래스

강남에 외관이 화려한 큰 빌딩이 작년 7월에 들어섰다.

멀리서 봐도 화려하고 좋아 보이는 빌딩이다.

알고 보니 오디움이라는 박물관이었다.

이 박물관은 웨스턴일렉트릭(음향기, 스피커등)의 세계적인 수집가이자 오디오 마니아인 KCC정몽진 회장의 기부로 지어졌다고 했다.


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오디오 컬렉션이 있고, 값을 매길 수도 없이 비싼 음향기기도 많다고 한다.

세계에 몇 개 없는 희귀한 오디오 장비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고, 모든 공간은 특별하고 또 자연스러우면서 화려했다.

무엇보다 가장 값진 노력과 시간을 공유받는 공간이라고 느껴졌기에, 머무르는 시간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전에 이건희 회장이 생전 모았던 예술작품들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는 경기도 미술관에 이어 KCC회장도 소리에 대한 제품들이 나온 지 100년이 되던 작년에 처음으로 박물관을 오픈했다.

(박물관은 적어도 100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이 있어야 승인이 난다고 한다)

무려 모든 진행을 무료로 말이다.


음향기기를 활용해서 음악을 드는 것은 부자들의 취미생활이었다.

모든 시대에서 비쌌던 음향기기를 구매해야 하고, 음향기기를 온전히 들을 수 있는 공간과 환경을 만들어야 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속적으로 전문가가 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음악의 장르에 따라 재질과 크기 그리고 모양과 성능까지 다 다르게 구비하려면

얼마나 많은 관심, 안목과 경제적인 자본이 필요한 것일까?

상상만 해도 값비싼 취미라고 느껴졌다.


KCC 회장님이 살아생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시간과 돈과 정성을 쓴 결과물들을 무료로 공유하고,

그 계기로 많은 일반 대중이 특별하고 쉽게 접하지 못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좋은 기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공유될 수 없는 경험은 확산될 수 없다.'라는 말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부자들만 하는 경험을 미리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감사하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KCC 회장님께 감사인사를 드렸다.

적어도 오디움박물관만큼은 기업의 궁극적 목표나 보이지 않는 이유보다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목적과 이유에 더 집중하고 싶은 공간이었다.

그렇더라도 더 칭찬받고 더 좋은 사례가 되길 진심으로 바랐다.




지금, 살기


자주 올 수 없음에 특별함을 느낄 수 있었고, 처음 하는 경험이기에 신기해했고,

값을 매길 수 없는 시간이기에 더 아쉽게 느껴졌다.

눈에 보이는 음향기기와 오디오장비들은 지금껏 봐왔던 스피커가 아니라 그냥 다른 독창적인 예술품처럼 느껴졌다.


수십 년을 이 분야에 종사하고 더 나아가서 진짜 사랑하지 않으면 걸어올 수 없는 길을 걸어온 분들이 직접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도슨트를 해주셨다.

설민석의 역사강의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몰입감이 있었고 거의 100분에 가까운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렸다.


음악을 들을 때는 라라랜드에서 선율에서 주인공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음악에 몰입할 수 있었고,

역사 이야기는 마치 내가 경험한 것처럼 파노라마처럼 그려졌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생의 몇 안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유난히 감사해했다.


누구한테 보여주기 위한 사진을 찍기 위해서 사진을 찍느라 눈에 더 담을 수 있는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이 순간을 놓치거나,

영상을 만들어 수익을 만들고 싶은 마음으로 영상을 남기느라 도슨트 님의 말을 흘려보내지 않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지금,

유일하게 내가 영향을 줄 수 있는 시제이다.

계속 더 중요한 지금 몰입하고 싶었다.

앞으로도 더 중요한 것을 알고 또 그렇게 선택하고 싶다.

퇴사 후 소중한 일상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도전 또한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테디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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