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섭리-
‘입장을 희망하시는 분께서는 종을 흔들어 안내인을 호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녀가 안내문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매표소에는 회색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그녀가 손끝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어깨를 으쓱했다.
마법사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기는 했지만 글쎄... 주변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한가하게 기지개를 켜는 햇살이 가장 소란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종을 흔들어 보았다.
‘끌랑끌랑’
아이가 까르르 웃는 듯한 맑고 투명한 소리였다.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작게 한숨을 내쉰 그녀가 두세 번 더 종을 흔들었다. 역시나 아무런 응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하고 고개를 흔드는 그녀가 벤치에 앉아 가방에서 작은 구슬을 하나 꺼냈다.
그녀는 구슬을 햇빛에 비춰가며 투명한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괜한 기대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자 피로감이 몰려왔다. 철야 작업이 잦아져 잠이 부족해진 탓이었다.
다니고 있는 회사에는 대체로 만족하고 있는 편이었다. 월급이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지도 않고, 대기업은 아니지만 업력이 30년이 넘은 나름대로 안정적인 회사다. 홈런은 아니어도 안타정도는 되는 셈이다.
다만, 유리공예 공방을 꾸리고 싶다는 오랜 꿈이 계속해서 눈에 밟힐 뿐이었다. 매끈하고 투명한 유리의 반짝임을 보고 있자면 무심코 거기에 녹아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름대로 결심을 하고 퇴근 후에는 공방을 차릴 준비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네 달이 넘도록 결정적인 확신은 얹지 못했다.
퇴사를 하자니 무모한 선택을 하는 게 아닐까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이다.
꿈을 포기하자니 슬프고, 쫓아가자니 두려운... 이것이 그녀의 딜레마였다.
실망한 그녀가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고 발걸음을 돌리려던 때였다.
처음에는 개미의 군단의 행진이라도 있는 듯 지면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이윽고 천 마리의 두더지가 땅속을 헤집고 다니기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그녀의 엉덩이가 들썩거리며 튕길 정도가 되었다.
덩치 큰 기차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자리를 피하자니 때가 늦은 것 같았다.
길을 집어삼키는 듯한 기세로 달리는 저것은 지구 끝까지, 아니, 설령 꿈속이라도 쫓아와 끝끝내 그녀를 먹어 치울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눈을 질끈 감는 것뿐이었다.
그녀의 앞을 스치듯이 아슬아슬하게 지나간 기차가 굉음을 내며 멈췄다.
바람으로 머리가 산발이 된 그녀가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다행히 저승행 열차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워- 워- 워- 착하지?” 기차의 맨 앞칸 위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소리를 따라 앞쪽으로 걸어갔다.
“안녕하십니까, 보시다시피 이 녀석을 달래고 있는 중이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숙녀분.”기관사 복장을 한 안내인은 우스꽝스럽게도 마부처럼 의자에 앉아 고삐를 쥐고 기차를 달래고 있었다.
기차는 진짜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안내인이 머리를 쓰다듬을 때마다 앞바퀴를 들썩이며 가쁜 하얀 연기를 연신 내뿜었다.
“여기 네가 좋아하는 각석탄.” 안내인이 기관실의 화로에 각진 석탄 덩어리를 집어 던지자 주황색 불꽃이 혀를 날름거리며 그것을 게걸스럽게 핥아댔다.
“덩치는 이래도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녀석이라 기운이 보통이 아닙니다. 덕분에 애를 먹고 있죠.”안내인이 손에 묻은 석탄을 털어내며 다가왔다.
“무엇을 티켓과 바꾸시겠습니까?” 안내인의 물음에 그녀가 가방 속에서 유리구슬을 꺼내어 내밀었다.
주먹 반 개만한 크기의 유리구슬의 안에는 별가루가 흩뿌려져 있었다.
“어렸을 때 잡화점에서 샀던 건데, 안이 반짝거리는 게 신기해서 자주 들여다보고는 했어요.”
안내인이 구슬을 햇빛에 비추자 별가루들이 째잘거리며 반짝였다.
그녀가 안내인의 기색을 살폈다. 추억이 담긴 물건을 놀이공원의 티켓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고작 구슬 같은 것을 가져왔다고 실망하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안내인은 보석 감정사처럼 구슬을 손수건 위에 올리고 요리조리 살펴보는가 하면, 구슬의 표면을 쓱 훑은 검지를 찍어 먹듯 맛을 보기도 했다.
그러고는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를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는데, 오른 눈썹은 위로 올라가고 입은 금붕어처럼 삐쭉 튀어나왔다.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던 그녀도 이 대목에서는 입술 사이에 밀어 넣고 있던 폭소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건 통과라고 봐도 될까요?" 그녀가 한참을 웃느라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매끄러운 향과 영롱한 맛이 일품이더군요. 제 마음에 꼭 듭니다." 안내인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품속에서 티켓을 꺼내 그녀에게 건내주었다.
안내인이 벗은 모자를 쥔 손을 오른쪽으로 길게 뻗고, 고개를 살짝 숙여 그녀에게 환영의 인사를 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