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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titbe Sep 22. 2024

검지손가락의 반란

아파보면 알게 되는 것들이 많다.


나도 모르게 얼마나 무리했는지에 대하여.

나를 아껴주지 못한 것에 대하여.

감사할 일이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하여.


알고 싶지 않아도 어느 한 곳이라도 아프고 나면 저절로 깨닫게 된다. 그 틈으로 나를 잠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내가 그랬다.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오른쪽 검지손가락 마디가 갑자기 뚱뚱하게 붓고 남의 살처럼 감각이 둔해지면서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느껴졌다. 주먹도 잘 쥐어지지 않고 아무래도 이상했다. 소염제만 대충 먹다가 호전이 되지 않아서 병원에 가서 초음파며 Mri까지 찍었다. Mri결과는 심한 염증이라고 하셨다. 검지손가락이  아프니 여러 가지 불편했다. 그만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검지손가락이니 탈이 날 수도 있다. 사무직으로 쉬지 않고 달려온 세월이 몇 년 후면 30년을 그리고 가정 주부로 19년을 맞이하니 가만히 생각하니 지금쯤 탈이 날만하다. 사실 이렇게 심하게 탈이 나기 전부터 가끔씩 탈이 나긴 했었으나 또 하루 불편하다 말고 그런 식이었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좀 조심하고 아껴 쓰라는 신호를 무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치 검지손가락이 마지막 경고를 하듯이 자기를 좀 아껴 쓰라고 시위라도 하는 것 같이 나아질 기미도 없어 보였다. 양약을 한약 먹는 듯이 정성 들여서 정신 차리고 챙겨 먹고 있고 파라핀치료기도 구입해서 하루동안 고생한 손을 마사지해 주며 노력 중이다. 무엇보다 빠른 호전을 기다리면서 집안일에 손을 아끼고 있다. 손이 불편해서 생활에 제약이 가해지니  안 아파서 설거지를 하는 편이 차라리 감사한 거였네 싶었다. 가끔씩 남편이 설거지를 능동적으로 도와주지 않는다면서 투덜거렸는데 손가락만 아프지 않으면 차라리 내가 다해도 되겠구나 싶을 만큼 손가락이 아프지 않던 때가 요즘은 그리울 정도다. 어쨌든 안 쓰던 식기세척기가 다시금 돌아가고 남편도 피할 수 없이 전담 설거지맨이 되어 본의 아니게 표면적으로 애처가가 되어가는 중이다. 이제 당연스레 설거지는 남편 몫처럼 설거지를 대하는 남편의 자세도 자연스러워졌다.


한 달이 지나가도록 좀처럼 붓기도 나아지지 않고 속상한 마음에 내 손가락을 물끄러미 보다가 꼭 이렇게 아파야 지나 현재 나에 대해 집중하고 보살피게 되는 것 같아 차라리 좋은 기회로 삼자며 속상한 마음을 스스로에게 진심반, 억지반인 위안으로 달랬다. 탈이 나지 않았으면 여전히 손이 귀한지 모르고 무리했을 테니 말이다. 내년이면 벌써 50이라는 나이줄에 들어선다. 100세 인생 기준으로 절반을 살고 있는 시점에서 조금씩 나를 더 보살피며 아껴주고  살아가라는 중간 점검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정신없이 살다 보면 스스로를 돌보는 일을 깜박하고 앞만 보고 달리기 쉬운데 검지손가락이 내 생활에 브레이크를 걸어준 셈이다.

앞으로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의 나를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괜찮은지 조금 더 바라봐주면서 살기로 다짐해 본다. 빨리 손가락이 다 나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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