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titbe Sep 29. 2024

미안하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은 들어야 맛입니다.


지금이라도 무례하게 했던 상대방이 내게 미안했었다고 하면 나는 좀 괜찮아질까. 결론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상대방은 뭐가 미안한 일인지도 전혀 모를 테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꽤나 의미 없는 일이긴 하다. 다만 감정이 말랑해질 때면 간혹 이전의 아쉬운 일들이 생각날 때가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라서 미안하다는 말이 주는 치유의 힘에 대해 생각해 봤다.

살다 보면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할 때도 있고 받게 될 때가 있는데 얼마 전까지는 미안하다는 말을 주고받는 것에 대하여 타이밍을 놓치면 아무 의미가 없는 줄만 알았다. 물론 최상의 타이밍은 있겠지만 설령 타이밍을 당장 놓쳤어도 진심은 통할테니까 늦게라도 미안하다는 마음과 그 말을 주고받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 사람은 왜 자기 기분대로 나를 대했을까.

내가 만만했나.'


기분을 태도로 꺼내 쓰는 사람들이 있다. 경험상 그런 사람들이 주는 상처는 오래간다. 정작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뒤늦게라도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상처를 받게 되면 완벽하게 잊기가 쉽지는 않다. 다 잊은 줄만 알았다가도 속상했던 마음이 시간의 무게에 가라앉아있는 것일 뿐 어느 누군가에게는 트라우마가 되기도 한다. 뒤끝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만큼 속상했던 마음이 컸기 때문이 아닐까. 내게도 아닌 척했지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내 감정을 누르고 무례한 상황에 괜찮은 척을 많이 했던  같다. 그 후회의 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시 마음에 드는 순간으로 재설정하고 싶은 마음에 이불 킥을 수차례나 했다.


그러고 보면 내 잘못도 있다. 무례한 상황 속에서도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웃는 얼굴을 하고는 때로는 그 어색한 기운을 모면하려고 기분 나쁜 티를 내지 않았으니 말이다. 연기자도 아닌데 포커페이스를 너무 잘했던 거였다. 상대에게 기분 나쁜 상황을 받으면 그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정색을 하면서 싸울 듯이 반격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당신의 태도는 선을 넘는 것 같다는 뜻이라던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무례하다는 뜻의 표현은 적어도 했어야 했다. 둥글둥글하게 갈등 없이 살고 싶어서 순간을 애써 괜찮은 듯하면서 넘겼지만 굳이 내 마음을 깎아가면서 둥글해질 필요는 없었다는 것을 나는 어른이 되고서도 너무 늦게 알게 됐다. 그때는 어리기도 했고 그렇게 상황을 넘기는 것에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 버려서 길들여진 것 같다.

더욱이 타인으로부터 나를 존중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 적도 없었고 싫은 티를 내는 것도 서툴렀기에 힘들었다. 그런 순간들을 조금씩 고민하기 시작했고 야무지게 이제는 예전과는 다르게 무례한 사람을 마주하면 내 감정을 피하지 말고 마주 서서 나를 지켜낼 마음을 먹었다. 더는 내게 미안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싫은 말을 못 하는 성격이었지만 이제는 싫은 말과 싫은 티를 내도 된다로 내게 가르치고 있는 중이다. 다만 늘 방법이 문제니까 나 역시 무례하지 않는 선에서 정중하게 티를 내는 방법을 터득해 가려고 애쓰고 있다.


미안하다는 말은 들어야 맛인 것 같다.

일단  괜스레 사람 좋은 척하느라 스스로를 힘들게 했으니 가장 먼저 미안하다는  진심으로 '지금의 내가 예전의 나에게' 전해주고 싶다.




 





이전 05화 검지손가락의 반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