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운데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할 때가 있다. 내가 지금 그러는 중이다.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을 받아들여야 할 때는 늘 현명하게 생각하자고 하지만 그 과정은 언제나 갈등 속에서 힘들다.
며칠 전에 가까운 안과에 갔었다. 렌즈삽입술을 17년 전에 했기 때문에 렌즈가 제대로 제 위치에 잘 있는지 눈에 대해서는 가끔씩 안과검진을 받기는 했었다. 한동안 검진을 못 받았는데 요즘 들어서는 오른쪽 눈 컨디션이 예전 같지가 않아서 계속 신경이 쓰였다. 내 나이에 이미 노안이 온 친구들도 있고 해서 나도 올 것이 온 건가 싶어서 이참에 눈에 대해서 괜한 걱정만 하느니 빨리 검진을 해보자며 눈 종합검진을 받았다. 검진결과는 망막시신경 모습이 정상인보다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녹내장 초기증상이 있는 것 같다면서 몇 개월 후 다시 보자고 하셨다. 녹내장이라니. 어느 정도 녹내장에 대해 주섬주섬 들은 것이 있었기에 덜컥 불안해졌다. 그냥 이대로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어서 대학병원을 예약했고 다행히 빠른 진료가 예약되어 이틀전에 대학병원에 다녀왔다. 큰 병원답게 수많은 검진을 실시했고 역시 오른쪽 눈이 녹내장이 우려된다는 결과를 전해 들었다. 지금 상태를 봐서는 초기를 향해 진행되고 있는 듯 말씀하셨고 피해 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얼마 전에 진료를 본 것이 오진이기를 간절히 바랐건만 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녹내장 하면 실명이라는 단어가 연관 검색어처럼 따라다니는지라 갑자기 우울해졌다.
초기부터 잘 관리하면 심각한 지경까지는 안된다고 괜찮다고 하지만 시신경손상은 다시 좋아지지 않는다고 하니 아무것도 하기 싫고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안약을 하루에 한 번 넣으라고 주셨는데 그 안약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을 설명 들으니 더 심난해졌다. 인터넷을 찾아서 볼수록 마음은 더 뒤숭숭하기만 했다.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을 어디에 투정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남편은 원래 경상도 사나이라 그런 건지 타고난 성향이 그런 건지 감정표현과 공감에는 무딘 사람이라 내 진료결과를 듣고도 별다른 얘기가 없었다. 검진결과와 함께 남편의 반응도 무심했다. 무딘 반응에 대한 긍정적인 나의 반응은 남편이 같이 호들갑을 떨지 않아서 다행인 건가. 심지어 이렇게까지 생각했다. 그동안 살아온 정으로 인심을 후하게 써서 남편한테 토라지고 싶은 마음을 겨우 달랬다. 적어도 '너무 걱정 말아라. 별일 없을 거야'라는 뻔한 위로라도 듣고 싶었는데 그게 어려운 일인 걸까. 인생은 역시 각자도생이란말인가.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든든하다고는 하지만 상황에 따라 때때로 조금 씁쓸해지기도 한다. 어쩌면 가족이라 더 큰 기대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만 생각하니 렌즈삽입을 하니 할 때는 너무 좋았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렌즈가 눈을 계속 덮고 있는 것이니 아무리 렌즈가 여러 가지로 좋아졌다고 해도 눈에는 좋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안경 없이 편해서 좋았는데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것일까. 세상이치가 이런 것일까. 비염 알레르기라 눈을 너무 막 비벼대서 그런가.멍하니 침대에 누워서 있자니 후회스러운 행동도 생각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들었던 여러 가지 생각들이 다시 머릿속에서 우왕좌왕 떠올랐다.걱정하고 속상한 탓에 인상만 찡그린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는 것을 잘 안다.그렇게 오는 스트레스는 더 안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웃어야지 어쩌겠는가. 속으로 혼잣말을 세뇌시키듯 되뇌었다.
정신을차려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해야겠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잠깐은 이 말이 나를 더 속상하게 했지만 살다 보면 명확하게 증명이 되지 않는 사실들도 있다.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어른인 내가 언제까지 감정적 일순 없다는 결론을 냈다. 자기 연민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는 생각을 오래전에 한 적이 있다. 자기 연민의 끝은 절대 긍정적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괜찮다'라고 내가 나를 타이르고 싶었다. 앞으로 눈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건강하게 관리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눈에 좋은 것이 뭐가 있더라'걱정할 시간에 작은 도움이 되는 것이라도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내일은오늘처럼 울적하고 싶지는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