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도 반려나무도 용기와 가르침을 주었다
이 비둘기들의 보금자리 나무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 것이 바로 몇 개월 전이었다.
그때는 헐벗었던 나무였는데, 여름나라에도 봄, 여름은 찾아오는 것에 또 한 번 감사하다.
사실 고향은 이제 가을이나 내가 살아가고 있는 여름나라는 한창 여름이다.
나의 집 앞마당, 공원에는 특별한 비둘기들의 세상이 있다.
도심에서 사는 찌들어버린 비둘기가 아니고, 자연에서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살아가는 정갈한 깃털들의 새들이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비둘기들이 살고 있는 공원이다.
이 공원에는 특히 비둘기들이 쉼터가 되고 있는 나무가 있다.
헐벗었을 때도 비둘기들이 찾아오는 나무, 이토록 푸르고 무성한 잎새들이 많은 나무가 되어도
여전히 비둘기들의 인기 나무다.
이 나무들은 독특한 2종류가 비둘기들과 경쟁하고 있다.
하나는 숲처럼 풍성한 잎새들의 울창한 산림 같은 나무로 비둘기들을 맞이한다.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이 나무들은 역경을 모르는 것 같다.
또 하나는 민둥산에 피어오른 잎새들을 채우지 못한 나무다. 그럼에도 찾아가는 비둘기들이 있다.
헐벗었던 시절을 이겨낸 나의 삶에 대비해 보면 딱 어울릴 것 같은 반려나무 동지들이 이 나무고 이들 비둘기다.
비둘기 나무
접기/펴기<감성 수필>여름나라 헐벗었던 상록수도 아낌없이 주는, 비둘기들의 나무
숲처럼 풍성한 잎새들의 울창한 산림 같은 나무부터 소개한다.
여름나라의 상록수로서 대표적인 활엽수인 이 나무는 사시사철 잎새들이 무성하지 않은 때가 없다.
사람으로 말하면 언제나 풍성한 모습으로 변함없이 마음 부자인 거인 같다.
그곳에 비둘기들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하다. 마음 부자들 곁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짙은 녹음이 무성한, 사시사철 구분 안되는 상록수는 늘 인기가 끊임없다.
비둘기들부터 사람들까지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삐쩍 마르게 보이는 나무는 특별히 애정이 가는 이유가 있다.
여름나라의 나무로는 한참 부족한 나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나무에 끌리는 것은 이 나무가 걸칠 옷도 없이 완전히 헐벗었을 때,
잎사귀 하나 없었을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 또한 우울하고 헐벗은 마음이었다.
그 나무 곁에 서서 나와 비둘기들이 어루만졌던 기억이 있다. 서로를 보듬고 세월을 보내었다.
지금 이 나무에 기적처럼 돋아나는 잎새들이 하나하나 모두 희망을 키워가고 있다.
사람도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 성장한 사람이 끌린다. 가난하고 부족할 시절을 겪었던 사람이 단단해진다.
이 나무에 나만 끌리는 것이 아니었다. 헐벗은 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던 많은 비둘기들도 이 나무에 끌렸다. 왜 그럴까! 반쪽만 무성한 잎사귀들을 피워낸 이 나무에는 무언가 다른 특별한 매력이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확실해지는 나의 삶과 같아서 그런 것을 깨닫게 된다.
나의 청춘은 정신적으로 헐벗었다. 미치 피어나지 못한 꽃처럼, 어두운 그늘에서 고군분투하는 어린 나무처럼 그렇게 화려하게 피어나지 못하였다. 사랑하고 존경하던 아버지는 내 나이 스무 살에 일찍 저세상으로 가셨다. 늘 모진 바람에 흔들려야 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고 헤매었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갔다. 늦게 일어선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사회에서 인정받는 인재가 되어갔다. 세상이 두려워 새파랗게 질린 청년시절 그전까지 축축하고 그늘진 곳에서 정신적인 방황을 견디면서도 포기하고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러했던 나의 헐벗었던 젊은 시절의 삶은 지금 중년에서야 짙은 녹음으로 마음을 채우게 되어간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작가로서, 감성과 지성을 글에 옮겨놓으면서 나의 삶은 상록수처럼 넉넉해졌다.
그런 오랜 세월 나에게 아내는 변함없이 나를 응원하고 바른길로 조언을 해주었다.
저 나무에 앉아 늘 한결같이 동반자가 되어주는 비둘기들과 같았다.
고향은 가을이다. 한 해를 풍성하게 수확하는 계절이다.
나는 여름나라에서 가을을 맞이한다. 이 공원은 사계절이 있다. 상상의 사계절이다.
한 번도 눈을 볼 수 없지만 연말이면 눈이 내린다고 상상하게 된다.
이제 연말까지 석 달이 남았다. 올해도 어려웠던 계절 헐벗고 추웠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천천히 한 걸음씩 버텨왔다. 그것이 상록수가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그 상록수를 지켜주고 응원해 주는 비둘기들도 동반자가 되어 힘을 주었다.
여름나라의 상록수는 늘 푸르른 잎새를 장식하기 위해서 한 해 동안 얼마나 노력하였을까!
다가오는 연말에는 상록수에 내려앉는 나의 겨울, 새하얀 낙원을 상상하면서 역경을 이겨낸 그 특별한
상록수 밑을 거닌다. <나의 중년은 청춘보다 아름답다>..(나의 공저책 에세이 제목처럼).. 푸르고 풍성하게 중년을 채워가고 싶다. 한때 헐벗었던 나무에게서 배운 만큼 단단해진 이 계절 푸른 성장을 멈추지 않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