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른들은 항상 화가 나 있어?"
아이가 제게 건넨 이 질문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아이는 정말 순수한 눈빛으로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죠. 저는 웃으며 “그럴 리가 있냐”라고 얼버무렸지만 마음 한편이 조금 찔렸습니다. 아이는 진심으로 궁금했던 겁니다.
올해도 어린이날이 다가왔고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어떤 장난감을 사줄지 어디로 놀러 갈지 고민했을 겁니다. 저도 매년 비슷하게 고민했었지만 올해는 조금 다르게 어린이날을 맞이했습니다. 아이에게 무엇을 해줄지보다, 아이처럼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 자신에게 되물어보았습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되면서 많은 걸 배웁니다. 질서, 책임, 효율, 이익 같은 단어들이 익숙해지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잃어버리는 것도 있습니다. 순수함, 호기심, 나눔의 기쁨, 그리고 진심. 아이들은 그런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며 삽니다. 사탕을 나누는 일도, 질문하는 일도, 이해할 수 없는 것에 울거나 웃는 일도 어른들이 보기엔 사소하고 유치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엔 진짜 가치가 담겨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는 자주 듣는 말이 있죠.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야지”, “양보해야지”, “같이 나눠 써야 해.” 그런데 정작 어른이 된 우리는 그 말을 지키고 있나요? 회사에서는 자리싸움, 온라인에선 악플, 길거리에서도 사소한 양보조차 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저는 한동안 나눔이란 걸 굉장히 무겁고 대단한 걸로만 생각했어요. 봉사활동, 기부 같은 것들 말이죠. 그런데 아이가 친구들과 나누는 사탕 하나 그 순수한 나눔을 보면서 마음이 찔렸습니다.
가치를 나누는 삶은 꼭 돈이나 물건을 나눠야만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내 경험, 내 시간, 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포함되죠. 그런 것들이 모이면 신뢰가 생기고 결국 관계 속에서 기회도 따라옵니다. 우리는 종종 돈을 벌고 나면 여유가 생기고 그때 가서 나누면 된다고 착각하지만 진짜는 반대예요. 여유가 있어서 나누는 게 아니라 나누기 시작할 때 여유가 생기는 거예요.
질문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묻습니다. 왜 하늘은 파래요? 왜 어른은 일만 해요? 구름은 왜 떨어지지 않아요? 처음엔 웃으며 대답하지만 점점 당황하게 되죠. 왜냐하면 그 단순한 질문 속에 우리가 잊고 있던 시선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질문을 멈춥니다. 다 안다고 생각하니까요. 몰라도 되는 거 그냥 그런 거라는 식으로 넘기면서 우리는 점점 무뎌지고 세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게 됩니다.
저는 요즘 의식적으로 질문하려고 합니다. 일상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건 왜 이럴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했을까? 내가 뭘 놓쳤을까? 그렇게 질문을 하다 보면 대화의 깊이도 달라지고 상대방과의 거리도 훨씬 가까워지더라고요. 질문은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용기이기도 하고 알고자 하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질문을 하지 않으면 배움도 없습니다.
어른이 어린이처럼 살아야 한다고 하면 대부분은 '철없는 행동을 하자는 건가?'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어린이처럼 산다는 건 철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삶의 본질적인 감각을 잊지 말자는 말이에요. 복잡한 논리보다 단순한 마음, 계산기보다 감정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것, 손익보다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 요즘 같은 시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 아닐까요?
속도, 성과, 효율. 지금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어요. 우리는 점점 더 빠르고 똑똑해지고 있지만 동시에 외롭고 공허해집니다. 그래서 더더욱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이 같은 시선’입니다.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나눌 줄 아는 마음.
올해 어린이날, 저는 아이와 함께 하루를 보냈습니다. 바닥에 앉아 블록을 쌓고, 색종이로 공룡을 접고 하면서 웃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더라고요. 허리는 아팠지만 마음은 정말 가벼웠어요. 아이는 늘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합니다.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과거에 머무르지 않죠.
어린이는 단지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어른이 배워야 할 존재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잊고 지낸 그 시절의 감각 마음속 어딘가엔 아직 남아 있습니다. 오늘 하루 그 아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곁에는 ‘작은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말없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진심을 가르쳐주고 있어요.
부디 오늘 하루, 그 아이들처럼 질문하고, 나누고, 웃는 하루가 되셨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