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연히 오래된 서랍을 정리하다가 대학교 시절 썼던 에세이 한 장을 발견하였습니다. 제목은 “나는 왜 계속 지치기만 할까”였고 그 안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누가 밀어줘야만 나아갈 수 있는 나는 나중에 어떻게 혼자 살아갈까?” 당시에는 왜 이런 문장을 적었는지도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정확한 질문이었다고 느껴집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 내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또는 “누군가가 알려준 길만 따라가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의문이 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실제로는 내가 선택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누군가의 설계나 구조 안에 있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라’는 말은 우리가 흔히 듣는 조언 중 하나이지만 정작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실제로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가 주는 지식이나 기준 없이 온전히 나 자신만의 생각과 판단으로 방향을 정해본 경험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나는 지금 글라이더처럼 누군가의 힘에 이끌려 날고 있는 걸까? 아니면 비행기처럼 스스로 날 수 있는 동력을 갖춘 상태일까? 이 질문을 시작으로 나는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시 정리해 보게 되었습니다.
글라이더는 매우 아름다운 비행체입니다. 거대한 날개로 하늘을 유유히 떠다니며 멋지게 비행하는 모습은 누구의 눈에도 인상적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글라이더는 스스로 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외부에서 밀어주는 힘 혹은 다른 비행기에 의해 끌려야만 이륙할 수 있습니다.
저는 글라이더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시키면 열심히 잘 해냈고 정해진 과제를 성실히 마무리했으며 칭찬도 자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혼자서 무언가를 시작하거나 방향을 정해야 할 때면 막막함과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제안보다는 따라가는 것이 편했고 정답이 정해진 문제에는 능숙했지만 전혀 새로운 상황에서는 한없이 작아졌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잘 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면에선 늘 스스로에 대한 불안이 존재했습니다. 내가 과연 혼자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까?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 성장하고 있는 걸까?
비행기는 글라이더와 다르게 스스로 동력을 가집니다. 엔진이라는 강력한 추진체가 있어 누가 밀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활주로를 달려 날아오를 수 있고 엔진은 단지 기계적인 장치가 아니라 자기만의 생각과 판단 추진력을 상징합니다. 비행기의 강점은 단순히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착륙했더라도 다시 날 수 있다는 가능성. 즉 자립성과 복원력에 그 진짜 가치가 있습니다. 저는 그 점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내 삶에도 그런 엔진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 엔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저는 독서와 글쓰기를 떠올렸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지식을 쌓기 위해 책을 읽었지만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생각이 깊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기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한두 줄씩 끄적였고 그것이 제대로 된 문장인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안에 떠다니던 생각들이 글로 정리되기 시작하면서 무엇을 고민하고 있었는지 어떤 시선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스스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제 안에도 엔진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지 그동안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데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작동시켜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후로 저는 어떤 상황에 놓이든 스스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연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프로젝트가 끝나 허무함을 느끼거나 인간관계에서 벽을 느끼는 순간에도 이제는 “다시 날 준비를 하자”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원래 비행기형 인간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창의적인 사람은 따로 있고 나는 그저 따라가는 사람이 더 맞는다고 느끼는 분들도 많습지만 저는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비행기가 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엔진이 없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아직 연료를 채워본 적이 없거나 시동을 걸 방법을 배워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단 몇 페이지라도 책을 읽고 느낀 점을 간단히 메모해 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작은 행동이 바로 엔진을 깨우는 시동이 됩니다.
삶은 수많은 착륙과 이륙의 반복입니다. 중요한 건 착륙했을 때 다시 날 수 있느냐입니다. 누군가가 끌어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내 안의 힘으로 다시 도약할 수 있는가. 그것이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힘입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지금 글라이더처럼 누군가의 방향에 의지하며 날고 계시진 않나요? 혹은 한동안 착륙한 채로 머물며 다시 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계시진 않나요?
그렇다면 조용히 책 한 권을 펼쳐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리고 느낀 점을 조심스럽게 써 내려가보세요. 내 안의 엔진이 깨어나는 소리를 곧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시 날 수 있습니다. 단지 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내 안의 엔진을 스스로 작동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천천히 그리고 단단하게 나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성장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