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으로 독일에 와서 3평의 작은 기숙사에 살았던 적이 있다. 유학을 하던 시기엔 줄곧 3에서 5평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나 혼자 살던 기숙사 방부터 다른 학생들과 주방등 공용공간을 나누어 쓰던 flat share 그리고 독일의 가정집에서 하숙까지 다양한 형태로 독일에 주거했었다. 그리고 이제는 직장생활을 하며 스무 평 정도의 집에 세를 들어 살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집은 나의 삶에 중요한 테마다. 이번엔 내가 독일에 살면서 집에 대해 듣고 경험하고 느낀 걸 써보고 싶다.
과연 집이 언제 지어졌어야지 오래된 걸까... 그 기준이 독일에서는 참 모호하다. 얼마 전 유튜브를 통해 본 한국의 한 예능 방송의 짤막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의뢰인에게 의뢰를 받아 집을 찾고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거기에 1990년도에 지어진 아파트가 소개되었다. 겉모습은 보기에도 낡아 보였으나 집 내부는 주인이 리모델링을 하여 정말 깔끔한 모습이었다. 그 집을 소개하던 패널들이 1990년이라는 그 아파트 건축연도를 이야기하면서 정말 오래된 아파트라고 이야기를 했다... 1990년이면 실제 30년 전 시간이다. 30년이면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1990년도에 지어진 건물은 그리 오래된 건물이 아니다. 얼마 전 집을 구매할 목적으로 여러 집들을 알아보면서 느낀 점이다. 매물로 나온 집들을 보면 1930년에 지어진 집도 있었는데 실제 그 집을 가서 보았을 때 느낀 건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았다. 물론 지난 시간 동안 여러 번 건물을 보수하고 부분적으로 외부와 내부를 리모델링한 집들도 있었지만 지어진지 70년이나 80년이 넘은 집이라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오히려 오래된 건물이 주는 아늑함? 같은 것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도 197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이미 지어진지 50년이 다 되어가는 건물이다. 그런데 그리 낡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독일에 있으면서 집을 알아보고 찾으면 1990년은 거의 새집 같은 느낌이고 1960년 1950년대 정도에 지어진 건물들은 보통같이 느껴진다.
독일에서는 집을 자기 소유로 구매하거나 월세를 내서 사는 방법이 있다. 이 두 방법 밖엔 없다. 한국에 있는 전세 같은 건 없다. 과연 월세를 매달 내고 사느냐 아니면 집을 구매하느냐는 독일에서도 중요한 테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두가 각자 집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다르기에 이 주제에 대해 누구와 이야기하든 서로 다른 입장들을 듣게 된다. 내가 알고 지낸 오랜 지인분은 이제 은퇴를 앞두고 있는 대학교수인데 그분은 지금도 월세로 살고 있다. 그분의 주장은 평생 월세를 내고 살아가는 것이 집을 구매하여 은행에 돈을 갚는 것보다 저렴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이야기한 독일 경제전문가의 기사를 읽은 적도 있다. 반면 구매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집이라는 실물자산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집값이 많이 오르지 않아도 언젠가 대출을 다 상환하고 나면 나에게 집이라는 실물자산이 생기고 대출상환 이후엔 집값 즉 월세에 대한 부담 없이 내가 지낼 곳이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구매 쪽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다만 구매 이후 집 유지 보수를 생각해야 하지만 그리고 대출을 상환하는 기간에는 경제적 부담도 있겠지만 언젠가 나에게 집이라는 것이 주어진다면 그 집이 대출이 없는 완전한 내 집이 되는 때가 나이가 많이 들어있는 때일지라도 그 집 하나로 나의 마음이 조금 든든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대부분의 인생의 주제가 그렇듯 월세냐 구매냐 역시 각각 장단점이 있다. 월세로 살면 집 유지 보수라는 부담으로부터 자유 하나 내 집이 아니기에 조금은 조심스럽게 살수 밖에 없고 집을 구매하여 살면 내 집이기에 집을 자유롭게 변경하고 사용할 수 있으나 유지 보수에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 있다. 어떤 것이 더 좋은지는 객관적으로는 알 수 없어 보인다. 각자의 경제 사정과 원하는 주거계획에 맞춰 결정되는 사항인 것 같다.
독일에 와서 느낀 점은 자신의 집을 자신이 직접 짓거나 리모델링을 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인턴을 하면서 만났던 직장 동료들 그리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같은 부서 사람들 중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자기 집을 짓는 경우를 봤다. 물론 수도나 전기와 같은 부분은 전문가를 쓰고 시공업체에 의뢰하기는 하나 바닥에 난방용 수로를 설치하는 일부터 단열재를 붙이고 지붕을 올리는 등의 일등을 스스로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독일 사람들과 이야기하면 자주 집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럴 때면 정말 나 말고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짓고 사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리고 그런 주제로 이야기가 진행될 때면 내 독일어 실력과는 상관없이 난 또 벙어리가 된다. 그들이 말하는 집을 짓는 과정이나 재료에 관한 내용들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집을 짓는 건 보통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 (나도 커피 마시며 이야기하는 동료들의 말을 주워 들었기에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먼저는 자신이 집을 짓고 싶은 지역에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이 있는지를 알아보고 그 지역에 땅 구매를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지역으로부터 허가가 나면 그 때을 매입하고 그 땅 위에 집을 짓는데 큰 틀이 되는 기초공사와 수도, 전기등을 시공업체를 통해 한 뒤 이후 자기 스스로 자재를 구입하여 집을 마무리 짓는 방식이다. (사실 마무리라고 적었지만 듣기에 거의 모든 것을 스스로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하실, 부엌, 방과 거실 바닥, 도배, 지붕 공사, 개인 차고, 마당과 테라스 마감 등을 자신이 대부분 직접 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렇게 집을 짓고 또 자기 스스로 보수하거나 리모델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그런지 독일에는 Bauhaus (집의 건축자재를 파는 곳)이 정말 많다. 나는 한국에서 살면서 사실 주변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을 많이 만나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보니 어느 순간이 되면 월세 집을 떠나 자기가 지은 집으로 들어가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도 가끔 나도 한번 내 집을 지어볼까 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물론 지을 자신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