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구해 준 한 사람의 삶에 대하여
타인을 온전히 사랑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 걸까.
근래 한참이나 곱씹은 문장이다. 생각을 멈추는 일이 녹록치 않아 또 한숨만 쉬면서. 예전에 자주 꺼내 읽던 소설의 주인공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지. 몸은 지옥에 있어도 마음만은 도원에 있기를 바란다고. 그때는 골몰할 일 없이 가볍게 넘기던 기억이 난다. 몸이 지옥인 것과 마음이 지옥인 것. 어느 쪽이 더 싫냐고 묻는다면 지금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자신이 있다. 마음이 지옥인 쪽은 괴로워서 살 수가 없을 테니까.
돌이켜 보면 자신의 한계도 자주 마주했다. 때때로 괴로워 견딜 수 없었고, 그렇게 쓰러진 날은 무기력하게 숨을 참았다. 별것도 아닌 일들이 종종 어린 마음을 무저갱까지 끌어내렸다. 그 시간은 절망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도 요원하다. 고작 한 사람의 삶에서 일어난 비극이지만, 내겐 이 한 몸이 전부였으므로. 다만 이제는 옳게 사랑하는 방법을 안다. 나를 제대로 건사하는 방법 또한 배웠다. 현재의 나는 내가 살아온 숱한 시간의 증거다. 무엇으로도 부정할 수 없는 귀한 자료인 셈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를 돌보는 일에 소홀했다. 연례 행사지만 이른 감이 없지 않다. 정확히는 작년과 올해에 걸친 이상한 시기다. 관성처럼 다정하려다 실패했고 자책했다. 대체 무슨 마음이 이렇게 생겨 먹어서 마음껏 사랑할 수도 없나 싶었다. 나를 향한 사소한 말들이 첨예한 비수가 되어 돌아왔다. 넉넉하지 못한 마음에 어긋난 대처를 해 버렸다. 차분하게 가다듬을 여유를 가져야 했는데. 그렇게 며칠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살았다. 사랑한댔다가 미운 마음이 울컥 치솟았다가 아주 변덕쟁이가 되어 버렸다. 나조차 나를 이해하지 못하며 몰아세웠다. 그러면 안 됐는데. 새삼 아직도 한참 어리고 무르다는 걸 자각했다. 영화나 드라마 속의 품이 넉넉하고 등이 다부진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나의 이상 속 어른은 한 몸조차 건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우리는 다른 별에서 온 존재라는 걸 안다. 열여섯 살 무렵인가. 사람은 평생 사람을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최전방에 매일같이 나선다. 치열하게 각자의 고민과 생각과 감정을 품고 살아간다. 말하자면 한 사람에게는 한 사람 몫의 우주가 있는 것이다. 그 광막하고 다채로운 곳을 무슨 수로 이해할 수 있을까. 다만 정성껏 존중하고 예찬하는 것. 그게 내가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도의적으로 어긋나지 않는 이상 모든 생은 무량한 가치가 있다. 나이에 국한되는 개념이 아니다. 고작 십몇 년의 삶에도 이토록 강한 신념이 담겨 있음을 내 삶으로 증명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건 당연하다고 여겼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가 사람을 사랑하는 건 당연하다고 여겼다.
사랑에 이토록 많은 품이 들어가는 걸 알고 있으면서.
어깨 스친 사람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나에게 손실을 입힌 사람도. 말과 행동이 험한 사람도 속은 그렇지 않은 걸 알았다. 내가 뒤틀릴 때에도 단지 나의 문제겠거니 싶었다. 무심히 던져진 돌에 깨져 죽는 개구리처럼, 나는 자주 아팠고 울었다.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걸 알았다. 서로 악의 없는 악의를 던지며 어쩔 수 없는 상처를 감내하는 걸 알았다. 그렇기에 더욱 사랑스러웠다.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싶었다. 내가 던진 악의는 한 개도 없길 바랐다. 만일 누군가 아프다면 견딜 수 없을 듯했다. 이해하는 나조차 이만큼의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는데. 자주 다정하고 표현하자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를 스친 사람들이 다치거나 앓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게 내 고통의 역치를 낮추는 일인 걸 모르고. 이제는 돌이 아니라 시선만 날아와도 어딘가 깨져 죽을 걸 모르고.
참을 수 없이 버거워질 때가 잦았다. 진심이 아닌 걸 알면서도 받은 상흔들을 헤아렸다. 부정적인 마음이 울컥 대가리를 치들었다. 토하고 싶었다. 말하고 싶은데 어디부터 말해야 할지 몰랐다. 쉽게 말해서 나는 예민해졌고 더는 주위를 감당할 수 없었다. 하루는 이기적이게 뱉어 버리고 싶었다. 나는 그러면 안 돼? 내가 이만큼 배려해 줬다면 이만큼은 받아도 되잖아. 그런데 왜 나처럼 해 주지 않아? 나를 왜 소중하게 생각해 주지 않아? 내가 너희에게 다정한 반만큼도 나에게 다정해 주지 않아? 내 마음을 존중해 주지 않아? 왜 나를 앓게 하는 건데?
마음이 가난해졌구나 싶었다. 어른처럼 굴던 내 한계를 직면한 것 같았다. 그건 사형 선고를 받은 기분과 동일했다. 이기적이고 치졸하다. 어리게 굴어도 되는 입장이 아니고, 어리광을 받아 줄 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닌데. 원치 않는 선물을 줘 놓고 보답을 조르는 못 배운 아이 꼴이 아닌가. 감내하기로 생각했는데. 필요 이상으로 사랑하는 관계들을 만들어 버린 이상 감당할 심산이었는데.
이 마음이 과거의 일이 아닌 게 나를 더 부끄럽게 만든다. 고백하자면 이 글은 나의 고해고, 앞으로도 종종 그럴 거라는 선고인 셈이다. 나는 상처를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고, 하고 싶지도 않다. 평생을 책임지지 않을 관계에 얄팍한 마음으로 짐이 되고 싶지 않다. 이걸 세 음절로 줄이자면 자존심이다. 어릴 적 접한 미디어에 그런 말이 있었지. 자존심을 잃은 건 죽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나는 그 말에 누구보다 적격인 사람이다. 이렇게 절망하면서도 반드시 일어날 나를 안다. 일어서서는 언제까지고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겠지. 결국 내가 당신들을 사랑한다는 건 그 상처를 감내할 준비가 되었단 뜻이다. 그렇다고 너무 자주, 많이 주지는 말고. 그렇다면 나는 또 자책으로 며칠을 앓아야 할 테니까.
따라서 나는 반드시 나를 사랑할 정도를 배워야 했다. 다행히 그 지도를 열아홉의 가을에 찾아냈다. 그럼에도 완성할 조각이 부족했다. 그걸 발견한 게 오늘이다. 생각지도 못한 장소, 생각지도 못한 언어로부터. 언내추럴이라는 일본 드라마, 그게 내 마지막 조각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미코토는 법의학자다. 국가가 밝혀내지 못한 사인을 찾는, 세계에 몇 없는 귀중한 인력이다. 시신을 부검하는 과정에서 신원과 원인을 찾고 나아가 진상까지 소명한다. 매일같이 온전치 못한 시체를 만지고 가르고 파악하는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리라 짐작한다. 다만 미코토는 부검대 옆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난다. 망설임 없는 칼끝과 단정적인 어투는 분야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다. 한 사람의 진실을 위해서라면 추가 근로도 마다하지 않는다. 굽히지 않는 신념과 올곧음이 있다.
미코토는 사람을 사랑할 줄 안다. 자신의 방법과 길로. 온몸을 내걸어 그 사랑을 표현할 줄 안다. 목소리를 내어 마땅한 것에 맞설 줄 알고, 외면하지 않을 것을 직면할 줄도 안다. 상처를 오래도록 담아 두지 않을 줄 알고, 나름의 길을 찾아 나아갈 줄 안다. 무엇보다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안다.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방법을 안다. 나에게 꼭 필요했던 것들이 미코토에게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줄 아는 것. 적당히 흘려 보낼 줄 아는 것. 그리하여 집중할 것에만 신경을 쏟을 줄 아는 것. 담백하게 여길 줄 아는 것.
사랑한다고 해서 감당할 필요는 없는 거였는데. 나는 그걸 너무 늦게 알아 버렸다.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요령도 배워야 했다. 과거는 과거의 잔재로 묻어 둘 때도 되었다는 걸 알아야 했다. 내가 늘 사랑하는 모습은 그런 것이었는데. 나는 여전히 성장 중이고, 그걸 알아차린 순간이 조금 즐겁다.
뭐든 무거운 건 재미없으니까.
절망할 시간이 있다면 맛있는 걸 먹고 자는 게 좋아. 가능하면 오래도록 붙잡고 있지 않는 것이 좋아.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은 앞으로도 잔뜩 있어. 깊게 생각하지 말고 좋아하는 걸 하자. 뭐든 적당히 넘길 줄 알면 됐어. 어려운 건 가볍게 넘겨 버리는 편이 좋아. 내가 사랑하는 나니까, 깨지고 다치게 두지 않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미래를 위해 지금 펜을 잡는 일. 미코토처럼 미래를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일. 언내추럴을 보면서 다시금 생각했다. 스스로 의료계에 몸 담기로 택한 건, 앞으로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판단이라고. 누군가의 내일을 지킬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 삶일까. 일생을 바쳐 마음껏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건 얼마나 행복한 삶일까.
내가 살아온 시간,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시간 전부를 걸고 타인을 사랑하고자 한다. 미코토의 삶을 단편적으로나마 보면서 배웠다. 지식은 누군가를 구하는 데에 있어 지대한 공헌을 한다. 그 누군가가 본인일 수도, 타인일 수도 있다. 사랑을 위해 내가 선택한 도구는 지식과 기술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선택한 길이고 방식일 테다. 미코토를 보며 이상을 정립했다. 나는 가볍고 단단하게 살고자 한다. 자책이니 절망이니 할 시간에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하나라도 더 하겠다. 그게 나를 올곧게 사랑하는 방법일 테니까.
언내추럴은 삶의 방향성을 잃었을 때 축복처럼 나타난 드라마다. 신년의 내게 새로운 이정표가 되어 준 미코토에게 헤아릴 수 없는 애정과 응원을 보내며.
당신의 모든 날을 누구보다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