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선 Nov 24. 2023

그 여자는..

엄마가 많이 보고 싶은가 보다.

 

생일날 엄마가 보낸 문자다.


오늘 큰 딸 생일이네. 축하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라.

너는 계절 잘 타고나. 너를 낳고 우리 엄마가 햇쌀밥에 미역국을 불 때서 푹 끓여주는 

국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지금도 니 생일 되면 그 미역국 생각하면 우리 엄마 생각나서 눈물이 난다.

우리 자식 넷을 우리 엄마 손으로 다 받았다. 우리 엄마가 의사 대신 했다.

우리 엄마는 나한테는 너무 고마운 부모였다. 

나는 우리 엄마한테 지금 생각하면 장사 실패로 엄마한테 가슴 아프게 해서 

너무 죄송스럽고 보고 싶다.


風樹之嘆(풍수지탄)!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효도를 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부모님 돌아가신 후에야 생전에 효도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자식의 슬픔은 크다. 


그 여자! 울 엄마는 10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순(順)하다고 해서 이름이 순선인데 그 때문에 '이순신'(장군)이라 놀림도 받았다고 헸다.

'가시나(경상도 사투리: 여자)가 무슨 학교를 가냐'라고 하던 시절을 살았다.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도 졸업 못한 울 엄마의 한글 맞춤법은 정확하지 않다.

소리 나는 대로 쓴다.

그나마 그 시절에 가시나로 태어나서 학교 문턱에라도 가 본 것은 다행이다. 졸업은 못했지만.


내 생일날! 엄마가 그리워하는 그 엄마는 오래전 돌아가신 외할머니다.

내가 일곱 살 무렵 돌아가셨으니 벌써 50년도 더 되었다.

환갑도 되기 전에 암으로 고생만 하시다가 가셨다. 호강 한번 못해보고..


외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던 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던 기억이 또렷하다.

내가 너무 많이 울어서.. 어른들이 걱정할 정도였다. '저러다. 애(아이) 잡겠다고..'

왜 그렇게 서럽게 울고 또 울었는지 모르지만 참 많이 울었던 것 같다.


내 생일날, 울 엄마는 그녀의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나 보다.

그 엄마가 끓여줬던 미역국을 떠올리며. (아마도 울었을지 모른다. 연세가 드시니 눈물도 많아지셨다)

엄마의 문자를 보고 바로 전화를 하지 않은 건..

엄마가 울고 계실지 몰라서다. 같이 울게 될까 봐! 


외할머니는 딸 다섯 중에서 유독 셋째 딸인 울 엄마를 좋아하셨다고 한다. 

딸이 낳은 네 명의 외손주도 직접 손으로 받았고 돌봐주셨다.

내가 태어난 음력 시월 중순은 추수도 끝나고 계절이 좋아서 햇쌀밥에 미역국을 끓여주셨던 모양이다.

그 미역국이 너무 맛있어서 지금도 기억을 하는 울 엄마.

논밭 팔아서 서울로 갔던 딸이 쫄딱(?) 망해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외할머니의 심정은 어땠을까?

자신의 못난 모습을 보여준 울 엄마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어렵고 힘들게 사는 모습으로 외할머니 걱정시키고 마음 아프게 해 드린 것이 

울 엄마에게는 한(恨)과 후회로 남아있다.


여든이 넘은 나이(84세)에도 울 엄마는 그 엄마가 그립고 보고 싶은가 보다.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잘해드리고 효도했을 텐데... 아쉽다.


울 엄마가 그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언젠가는 나도 울 엄마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다고 눈물 흘릴 날이 오겠지?

그날이 오는 것이 무섭고 두렵다. 

그날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효도해야 한다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다음에 이다음에'를 말하는 못난 딸을 이해해 주실까?

괘씸하고 서운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생일날 받아 본 엄마의 문자는

'나 살아있을 때 잘해라. 나처럼 엄마 잃고 나서 울지 말고..'

이런 뜻이었을까?

무심한(?) 딸자식, 자주 볼 수 없는 딸을 나무라는..

보고 싶으니 자주 오라는 그런... 마음의 표현일까?

울 엄마! 낳아주고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울고 싶을 땐 실컷 울어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