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15. 교차 (그들)
(1)
윤아의 시점
‘지이이잉—’
침대 옆 탁자에서 윤아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당신 전화 아니야?”
그녀 위에 올라 있던 그가 탁자를 쳐다봤다. 윤아는 상관없다는 듯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다시 한 번 핸드폰이 진동했을 때, 윤아는 전원을 꺼버리고 그에게 ‘지금에 집중해줘.’라는 표정으로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녀의 생각으로 표현하자면, 애석하게도 그들의 사이에는 언제나 하루의 끝이 있다. 열정이 사라지면, 하루의 끝이 그들의 관계를 갈라놓는다.
“오늘은 같이 있어 줘.”
옆에 누워 있던 그가 대답 없이 천장만 바라봤다. 윤아는 그 말을 괜히 내뱉었다는 생각과, 알 수 없는 고독감에 그에게서 몸을 돌렸다. 그는 새벽 2시 30분이 되자 나갈 준비를 마쳤다. 윤아는 누운 채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나갈 때까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잠에 집중하려 했다.
문이 닫히고 방 안에 혼자 남자, 누워 있던 윤아는 그제야 몸을 움츠렸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핸드폰 전원을 켰다. 그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혹시 그가 미안함에 전화를 걸진 않았을까. 윤아는 잠시 핸드폰을 입가에 대고 주저했다.
‘지이이잉—’
그가 미안함에 전화를 걸었던 게 분명했다. 화색이 도는 얼굴로 핸드폰을 쳐다본 순간, 윤아는 실망하고 말았다. 그가 건 전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2)
인성의 시점
한편, 밖으로 나온 그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3월 초순의 밤거리는 스산했다. 살을 에는 찬 공기가 그를 감쌌다.
그는 양손을 재킷 주머니에 넣은 채, 한쪽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거리를 걷는 동안, 그는 계속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리고 이름 없는 번호를 눌러 본 채, 한동안 핸드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3)
혜선의 시점
혜선은 또 같은 시간에 눈을 떴다. 눈이 흐릿했다. 혜선은 응접실의 하얀 탁자 앞에 앉아, 팔로 아래턱을 받친 채 부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작게 열린 테라스 문틈 사이로 바람소리가 들렸다. 분명하진 않지만, 몇몇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섞여 있었다. 자동차 바퀴 소리가, 사이렌 소리가, 밤거리의 소리가 그녀의 귓속을 채우고 있었다.
그녀는 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대로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팔로 얼굴을 받친 채 꼭 그 자세 그대로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압박이었다. 그녀는 어째서 그렇게까지 자신이 불편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혜선은 점점 피곤해지고, 더 큰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그 자세는 마치 어떤 깊이 있는 생각에 잠긴 한 여성이 카페에 앉아서 취하고 있을 법한 자세였다. 탁자 옆 붙박이시계의 숫자가 흐릿했다. 3시, 그리고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도 날을 새고 말 것이라 생각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자신의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고 싶었지만, 의식은 점점 몽롱해졌다.
그녀는 그대로 그 자세에 만족한 채, 그렇게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날이 새고,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아침 햇살과 활기찬 거리의 소리가 들릴 때까지, 자신은 이대로 멈춰진 채 또렷한 감각과 몽롱한 정신, 신체의 무력함과 함께 시간을 흘려보내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말 것임이 분명해졌다.
응접실에 햇살이 들었다. 아침이 되었고,
“이런, 제길.”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단어를 내뱉었다. 욕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점점 더 큰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느꼈다. 비참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눈을 떴다.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직 3시 12분. 주위는 어두웠고, 창문은 닫혀 있었다. 심장이 요동쳤다. 터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밀려왔다. 이 불안이 자신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움츠렸다.
방 안은 어둠과 정적으로 고요했고, 시계는 정확히 3시 1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또 그런 꿈이었다. 이게 꿈이 맞는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사실인지 아닌지 구분하기도 애매했다.
‘내가 느낀 것은 사실이 맞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은 것은 사실이 아니다.’
복잡한 문장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녀는 우선 모든 걸 내버려두고 자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자신이 비참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녀의 의식 안에서는, 방금 본 자신의 불편한 자세가 떠올랐고 피곤한 24시간이 그대로 느껴졌기에 여러 차례 꿈을 되짚으며 불안해했다.
그리고 결국, 진짜 아침이 되었다.
(4)
그들
새벽 3시 12분. 그녀는 그의 전화를 기다리고, 또 다른 그는 또 다른 그녀의 전화를 기다린다. 그리고 어떤 이는 누구의 부재도 기대하지 않으며, 또 어떤 이는 부재의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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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소개]
이 작품은 인간 내면의 다중성과, 사랑 속에서 일어나는 자아의 분열과 통합을 다룬 심리소설입니다.
융의 ‘Self–Persona–Shadow’ 개념을 바탕으로, 기억과 망각, 침묵과 거짓 사이에서 존재의 경계를 오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사랑은 나를 하나로 만들어주는가, 아니면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내는가?”
사랑이 존재의 통합을 이루지 못할 때, 인간은 타인을 통해 자신을 복제하고, 그 시선 속에서 새로운 자아로 다시 태어나려 합니다.
이 소설은 사랑과 정체성을 실험하는 심리소설이자, 복제된 자아의 시대를 사유하는 실존적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