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THE OPERATION 14화

체념의 이야기Ⅱ- 윤아의 시점

윤아와 지만

by 호수를 걷다




THE OPERATION

4장. 침묵 - 관계의 그림자


13. 체념의 이야기Ⅱ- 윤아의 시점 (윤아와 지만)




윤아는 침대 위에 옆으로 누워 있다. 손가락으로 하얀 벽을 탁탁 두드린다. 그러나 아무 의미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에게서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 있다는 확신만 점점 더 선명하게 느낀다. 이렇게 흘러가는 모든 것이 이제는 화가 날 지경이다.

어쩌다 모든 것이 이렇게나 지루하고, 고요하고, 공허해져 버린 것일까.


윤아는 독립적인 여성이다. 집에서는 막내였지만, 약한 언니를 생각해 언제나 자기 일은 스스로 해결했다. 자신이 보기에 한 번도 부모님 속을 썩인 적이 없다. 어린 시절, 그녀는 스스로 강하다고 믿어야 했다.


윤아는 가죽 재킷과 늘어난 흰 티를 좋아한다. 특별히 향수를 쓰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녀에게서는 옅은 비누 향이 나고, 가끔 핸드크림의 향이 스친다.
그녀는 새하얀 방과 높은 천장, 텅 빈 공간을 좋아한다. 그녀를 닮은 집은 아주 높고, 하얗고, 몇 개의 커다란 액자가 걸려 있다. 액자 속에는 흑백 사진들이 있다. 그녀는 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밤을 느끼고, 오후의 빛을 느끼고, 아침의 찬 공기를 느낀다.

윤아는 작고 차분한 말투로 말한다. 혼자 있을 때는 거의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한다. 단지, 지금까지 했던 생각들을 정리하려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녀는 한 단어로 관계를 규정하는 방식을 싫어한다. 그런 방식은 누군가의 개성을 쉽게 지워버리고, 깊은 생각을 얕고 천박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차라리 이 감정을 단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순간이 이어지는 지금의 시간은 너무 끔찍하다. 그녀는 이 관계 속에서 독립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느낀다. 우울함, 적막감, 허무함 —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감정들로부터.


“관계 속에서의 독립.”


그녀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둠 속에서, 그와 자신이 이 감각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실망, 허무감, 미련—그 모든 것을 놓아야 할 때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윤아는 핸드폰을 든다. 그러나 그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녀는 통화되지 않는 핸드폰을 탁자 위에 내려둔다. 그리고 곧 생각을 바꾼다.
사실, 전화하지 말았어야 했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일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별다른 이야기 없이 관계를 이어갈 것이다.
그녀는 지금의 불안은 ‘혼자만의 느낌’이라고 자신에게 암시한다. 하루가 지나 아침이 오면, 전날의 감정들은 묻히고, 새로운 땅을 밟듯 하루가 다시 반복될 테니까.


그녀는 빨간 커피머신으로 에스프레소를 내린다. 창밖 안개가 사방을 뿌옇게 뒤덮는다. 윤아는 하얀 쇼파에 몸을 기대고 앉는다. 눈을 감자, 옅은 비누 향이 은근하게 퍼진다.

그때,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그녀는 화면을 본다. 수신자 번호는— ‘지만’이다.
윤아는 쇼파로 돌아가 에스프레소 잔을 들어 올린다.







THE OPERATION

https://brunch.co.kr/brunchbook/the-op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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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소개]

이 작품은 인간 내면의 다중성과, 사랑 속에서 일어나는 자아의 분열과 통합을 다룬 심리소설입니다.

융의 ‘Self–Persona–Shadow’ 개념을 바탕으로, 기억과 망각, 침묵과 거짓 사이에서 존재의 경계를 오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사랑은 나를 하나로 만들어주는가, 아니면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내는가?”

사랑이 존재의 통합을 이루지 못할 때, 인간은 타인을 통해 자신을 복제하고, 그 시선 속에서 새로운 자아로 다시 태어나려 합니다.


이 소설은 사랑과 정체성을 실험하는 심리소설이자, 복제된 자아의 시대를 사유하는 실존적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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