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아와 지만
12. 체념의 이야기Ⅰ - 지만의 시점 (윤아와 지만)
윤아와 지만은 이른 저녁을 마치고 지만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오래 사귀어 익숙하다 못해 권태로운 커플로 보일 수도 있지만, 연인은 아니다. 그렇다고 친구도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애매한 관계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들은 아직 ‘친구’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다.
그녀는 침대에 벗어놓은 티셔츠를 입었다.
“우리라고 할 수 있는 건, 우리끼리만 알기로 해.”
“그래.”
그는 잠깐 머뭇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응,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윤아는 재킷을 걸쳐 입고, 재킷 안으로 푸석하게 뭉친 머리칼을 털어냈다. 그녀가 가방을 메고 뒤돌아, 그가 앉아 있는 침대를 쳐다본다. 그 눈빛에는 로맨틱한 애정도, 에로틱한 정열도 없다. 그녀는 피로해 보이는 눈빛으로 짧게,
“갈게.”
라고 말한 채 문을 닫았다.
그는 실망하지 않았다. 언제나 지루하게 반복되는 여정이 씁쓸할 뿐이고, 그녀가 안타까웠다.
그녀는 마른 나무, 메마른 땅, 건조한 공기 같다. 그는 맨몸으로 일어나 창가 앞 피아노에 앉았다.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단조로운 멜로디를 눌러본다.
그녀는 자신을 허락해주지만, 공허함만을 허락한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이기적인 것일까? 그녀는 두려운 것일까? 아니면, 그녀만의 사랑 표현일까?
아니다.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희생한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모두에게 언제나 그래온 것처럼 나에게도 그럴 뿐이다.
하지만 그녀가 좀 더 이기적인 인간이 된다면, 나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괜찮다. 그녀가 느끼는 숨 막히는 건조함이 사라질 수만 있다면 좋겠다.
그는 눈을 감고 그녀의 목을 떠올린다. 그녀가 떠오르다가 다시 사라지면, 그는 허공 속의 그녀의 자취조차 붙잡지 못한 채 체념한다.
그것이 그들의, 계속되는 체념 섞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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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소개]
이 작품은 인간 내면의 다중성과, 사랑 속에서 일어나는 자아의 분열과 통합을 다룬 심리소설입니다.
융의 ‘Self–Persona–Shadow’ 개념을 바탕으로, 기억과 망각, 침묵과 거짓 사이에서 존재의 경계를 오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사랑은 나를 하나로 만들어주는가, 아니면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내는가?”
사랑이 존재의 통합을 이루지 못할 때, 인간은 타인을 통해 자신을 복제하고, 그 시선 속에서 새로운 자아로 다시 태어나려 합니다.
이 소설은 사랑과 정체성을 실험하는 심리소설이자, 복제된 자아의 시대를 사유하는 실존적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