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아와 지만
THE OPERATION
14. 돌파구 (윤아와 지만)
(1)
그는 한 달 동안 윤아를 보지 못한다.
그리고 한 달 뒤 다시 만난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이지도, 그렇다고 예전 그대로의 윤아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는 볼펜으로 탁자를 탁탁 두드린다. 한 박, 한 박, 천천히.
그의 표정은 비어 있는 듯 보인다. 지루함을 표현하는 얼굴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 생각도 없는 얼굴도 아니다.
그는 잠시 생각을 멈춘 상태에 가깝다.
20분이 지나서야, 윤아가 카페 안으로 들어와 그 앞에 앉는다. 그리고 그녀는 그에게 낯선 남자를 소개한다.
그는 낯선 남자와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고 문밖으로 나온다.
숨 막히는 공기, 사람을 죄어 오는 듯한 기운,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감.
그 남자의 눈빛은 그가 살던 세계의 그것이 아니다. 그는 정말로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문틈 사이로 보이는 두 사람을 바라본다.
윤아는 그 낯선 남자에게 다정하게 웃고 있다.
두 사람이 떠나자, 그는 멍한 얼굴로 길가에 계속 서 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사라지고, 버려지고있음을 느낀다.
‘돌파구?’
‘그래, 돌파구.’
그는 그녀가 사라지기 직전, 마지막 나눴던 대화를 떠올린다.
“있잖아… ‘돌파구'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닌 건 아닌가 봐.”
그 말은 그가 아닌, 그녀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녀는 처음으로 그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둘은 정적 속에서 커피를 마셨고, 재떨이를 가운데 두고 번갈아 담배를 비벼 껐다.
“우린 서로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한 것 같아.”
그녀가 처음으로 ‘이기적이기’ 시작했을 때, 그에게 했던 말이다.
그는 그때 처음으로 그녀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
그는 멍청할 만큼 담담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생각보다 평온한 미소였다.
그녀가 집을 나간 뒤, 집 안에는 정적이 가득했다.
밖에서는 오후의 아이들 소리가 들렸다.
그는 창 너머로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녀에게 아직 ‘생기’가 있으니, 자신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한다.그는 그때 분명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생각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2)
그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은 같은 줄의 기타를 튕기거나, 같은 음의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내리거나, 식은 커피를 마시면서 창문 아래에 발을 올리고 앉아 밖을 구경하거나, 햇살을 맞거나, 혹은 커피를 내리던 일을 잊지 않고 의자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거나.
혹은——
그는 맨바닥에 누워본다.
아니다. 그는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는 바닥에 누워 있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건 그녀가 곁에 있을 때, 가끔 그녀와 같은 자세로 누워 있어 본 것뿐이다.
그는 다시 한 번 피아노 선반을 두드렸다. 같은 음이 같은 박자에 맞춰 지루하게 울렸다.
‘하지 못한 대화를 시작할 때가 아닐까.’
그는 핸드폰을 들었다.
‘띠—— 띠——’
부재중 신호음이 이어지고, 다시 걸었을 때 상대는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다. 그는 문자를 보낼까 하다가, 핸드폰을 피아노 위에 내려놓았다. 햇살이 창가로 들어왔다. 창가 곁 피아노에 앉아 있던 그는 다시 한 번 그 건반을 눌렀다 뗐다 반복하다가, 햇살 좋은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악보를 보고 연주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지루한 것에 짜증이 나려던 참이었다.
그는 양손을 건반 위에 올리고, 지금까지 못 했던 음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언제나 그녀를 기다렸던 날들. 기다리는 동안 치던 연습곡, 체념의 곡, 수다 대신 떠드는 곡, 자신이 아무렇지도 않다고 스스로를 합리화 하기 위해, ‘또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쉬운 방식을 결정하기 위한 해소의 곡들을.
https://brunch.co.kr/brunchbook/the-operation
[브런치북 소개]
이 작품은 인간 내면의 다중성과, 사랑 속에서 일어나는 자아의 분열과 통합을 다룬 심리소설입니다.
융의 ‘Self–Persona–Shadow’ 개념을 바탕으로, 기억과 망각, 침묵과 거짓 사이에서 존재의 경계를 오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사랑은 나를 하나로 만들어주는가, 아니면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내는가?”
사랑이 존재의 통합을 이루지 못할 때, 인간은 타인을 통해 자신을 복제하고, 그 시선 속에서 새로운 자아로 다시 태어나려 합니다.
이 소설은 사랑과 정체성을 실험하는 심리소설이자, 복제된 자아의 시대를 사유하는 실존적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