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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종인 Oct 14. 2024

마흔 살이 되어 수능이 끝났다

프롤로그

더는 무를 수 없는 마흔 살이 된 새해 어느 날. 언제부턴가 나를 괴롭히던 꿈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됐다. 보통 남자들은 군대 시절 꿈을 꾼다고 하지만, 내가 꾸던 꿈은 언제나 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시점이었다. 군대는 장교로 다녀온 터라 큰 스트레스가 아니었을까? 어쨌든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수능꿈’이 나를 괴롭히는 유일한 악몽이었다. 서른 살 즈음 시작된 수능꿈은 주기가 점점 짧아지며 연재물처럼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단순히 지금 기억을 가진 채 고등학교 삼 학년 시절로 돌아가더니 약 십 년간 봄과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어 어느덧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온 식이다. 꿈속에서 수능을 보던 날에는 그간 나태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며 후회의 눈물을 흘렸을 정도.


평가 방식은 늘 내가 치른 400점 만점에 언어, 수리, 사탐/과탐, 외국어 영역. 회귀물 웹툰도 아닌데 묘한 자신감에 차 있던 꿈속의 나는 오로지 수리 영역만을 걱정하고 있었다. 언어 영역이야 전공이나 직업이나 못하면 안 되는 상황이고, 사탐은 오히려 그 시절보다 지식이 더 늘어난 편. 영어도 뭐…… 그런데 결정적으로 지금의 나는 근의 공식조차 기억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수리 영역 1번 문제부터 풀 수 없을 거라는 절망감.  그 괴로운 기분으로 밤새 끙끙거리며 시달렸던 것이다. 장장 십 년이라는 세월을.


그리고 퇴사를 결심한 지난해 1월. 꿈속에서 또다시 고등학교 삼 학년으로 돌아간 나는 어머니에게 우편을 한 통 받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수능 성적표. 몇 번이고 개정된 수능 평가 방식을 알지 못하니 단순히 등급과 % 로만 기록되어 있었다. 결과에 충격을 받아서였을까. 스무 해 전보다 한참 모자란 성적에 놀라 잠에서 깼다. 맹한 정신 상태로도 충격이 상당했는지 곧장 스마트폰을 들어 내 성적의 위치를 확인했다. 갈 수 있는 대학은 어디인지, 정시로 어디까지 도전해 볼 수 있는지…… 결과는 20년 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는 현재 수능 응시자 수를 대입하니 꿈속 수치와 비슷하게 나왔다. 지금이나 20년 전이나 내 앞에 있는 아이들의 수는 같았던 것. 더 앞서지도 뒤쳐지지도 않는 삶이었던 걸까.


취업이 늦어지고 젊은 시절을 헛되이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수능을 더 잘 보았다면, 훨씬 전도유망한 대학과 학과를 지망했다면 어땠을까 후회하곤 했다. 특히 현재의 지식을 가지고 과거로 회귀하는 스토리가 유행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사람도 많아졌을 터. 하지만 꿈속에서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성적, 비슷한 결과를 내었다. 어떤 선택을 했든 내 삶은 지금과 같은, 중간 그 어딘가의 삶이었을 것이란 메시지인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놀랍게도 그 이후로 나는 단 한 번도 수능꿈을 꾸지 않게 됐다. 각종 지원 사업에 ‘청년’이란 단어가 붙었을 때 지원할 수 있는 마지노선은 만 39세. 더 이상 청년이 아닌 마흔의 시작에서,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던 시험에서 비로소 해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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