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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종인 Oct 14. 2024

당신의 결핍은 무엇인가요

헬로카봇으로 알게 된 너와 나의 유년기

“요즘 로봇은 낭만이 없어.”


헬로카봇과 또봇이 점령한 장난감 매대를 둘러보면 하나 같이 디테일이 섬세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옛날에는 곡선이 우아했던 슈퍼그랑죠, 사자 다섯 마리가 합체했던 볼트론 등 개성과 멋이 폭발하는 로봇들이 많았는데……. 아이와 함께 장난감 가게에 들어서면 묘하게 꼰대가 되는 나를 발견한다. 세 돌을 넘긴 아이는 자동차보다 로봇을 더 좋아한다. 애니메이션 한 편 보지 못했어도 박스의 로봇 그림만으로도 소유욕이 폭발하나 보다. 구경만 하자고 들어간 가게 안에서 로봇 박스를 하나 들고 사달라고 조르는 모습이 너무나 상투적이라 웃음이 났다. 그나마 티니핑이 아님을 감사할 뿐이다.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장난감은 바로 합체 로봇 ‘펜타스톰 엑스’였다. 몸체인 스톰 엑스를 중심으로 경찰차, 소방차, 구급차, 특공대 차량이 양팔과 다리 역할을 한다. 패키지뿐만 아니라 단품으로도 판매하는데, 각각 로봇으로도 변신이 가능했다. 크기도 가격도 거대한 이 펜타스톰 엑스는 출시한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지난해 처음 개최된 ‘대한민국 우수완구 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합체 로봇의 모든 기술적 요소가 집약됐다’는 심사평이 의미심장하다. 아이의 안목이 뛰어나다 해야 할지, 마케팅이 뛰어나다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나중에’로 애써 구매를 미루던 올해 봄, 잠시 부모님 집에 아이를 맡긴 사이 떡하니 로봇 하나가 생겼다. 기쁨 반, 걱정 반 표정인 아이가 박스를 내밀며 자랑하던 로봇은 펜타스톰 엑스의 왼발을 담당하는 구급차 ‘댄디 엑스’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생일 등 축하할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씩 선물해 궁극의 합체 로봇을 완성하자고 부모님과 우리 부부 모두 약속했다.


여름휴가를 맞아 미국에서 일하고 있는 친동생이 한국을 찾았다. 팬데믹 등 핑계로 오 년째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던 터라 무척 반가웠다. 특히 아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삼촌을 실제로 만나는 일이었다. 만남에 대한 기대는 단순히 처음 때문은 아니었다. 장난감을 사주기로 한 약속이 그 기대의 대부분이었을 게다. 귀국하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시차적응도 안된 삼촌 손을 잡고 곧장 장난감 가게로 향한 것을 보면……. 퇴근 후 집에 오니 부모님과 동생이 와 있었다. 오랜만에 기쁨의 재회를 나눌 새도 없이 아이의 장난감 자랑을 들어야 했다. 무려, 크기도 가격도 거대한 펜타스톰 엑스였다.


“요즘 로봇은 왜 이렇게 복잡해?”


나와 세 살 터울인 동생은 많은 장난감을 공유했던 탓에 비슷한 추억이 남아 있어서일까. 아이의 부탁으로 합체를 시켜주며 동생이 구시렁거렸다. 나와 했던 약속이 무산되어 민망했는지 어머니가 말을 거들었다. 왠지 모르게 제대로 용돈을 받지 못했던 유년 시절, 동생이 간절히 원하던 로봇 장난감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한 푼 두 푼 용돈을 모아 내가 사준 기억이 동생에게는 강렬히 남아 있었다고. 그래서 조카에게 가장 크고 멋진 첫 장난감을 선물해주고 싶었단다.


유년기의 결핍은 어른이 되어 치유의 보상으로 이뤄진다. 이제 와서 크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지만, 그 시절 가져보지 못한 물건을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에 구매하고 집안 어딘가 장식해 둔다. 아예 그런 어른을 타깃으로 나온 제품도 제법 많다. 레고, 건담 그리고 리마스터링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각종 게임들. 어른이 된 남자들은 너무나 쉽게 충성 고객이 되어버린다. 동생에게는 조카에게 최고의 장난감을 선물해 주는 것이 자신의 결핍을 치유하는 일이었다. 나의 동서 역시 온갖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CD(반드시 실물이어야 한다)를 구매한다. 종종 만날 때마다 어떤 게임을 샀다고 알려주고, 그 게임에 대한 추억을 나와 함께 이야기하지만 정작 플레이를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일주일 내내 학원을 다녀야 했던 학군의 유년이 만든 결핍이었다. 일본에서도 어른이 되어 흑백 디스플레이의 ‘게임보이’를 구하고 첫 전원을 켤 때 나오는 로고음에 눈물을 흘렸다는 사연이 공감을 얻은 적 있다.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색이 바래져 서글픔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장난감, 특히 만 원도 안 하는 미니카는 아무 의미 없는 날에도 쉽게 쉽게 사주곤 한다. 조건을 달지도, 다음 번은 없다는 등 경고도 하지 않는다. 가끔 그런 내 모습에 아내가 화를 내기도 하지만, 아마 그것이 나의 어린 시절 희미한 결핍을 치유하는 방법이었을 거다. 그렇다면 나와 동생의 결핍은 왜 생겨난 것일까? 유복하지 않았지만 가난하지도 않았던 우리 집에서 아버지는 왜 유독 엄격히 장난감 사는 것을 못마땅해하셨을까?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등하교를 시켜주며 우리에게 헌신하던 아버지가 왜 그랬을까? 아이가 태어나니 내가 어린 시절 하지 못 했던 것을 몽땅 다 해주고 싶은 마음뿐인데……. 그 순간, 나는 아버지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아무 걱정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이를 발판으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막연히 학업 성취에 대한 강요라고 생각했던 아버지의 행동이 사실, 어린 시절 결핍을 치유하는 유일한 일이었음을.


미담을 소개하며 감격한 어머니에게는 죄송하지만, 과거 동생에게 장난감을 사주지 않았던 아버지의 머쓱한 표정에 괜한 말을 덧붙였다.


“그거…… 동생 핑계로 내가 갖고 싶어 산 거겠지.”


흥이 깨진 어머니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지만 곧 기분이 좋아 방방 뛰는 아이가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을 번갈아 안아주는 탓에 금방 집안 분위기는 다시금 훈훈해졌다. 아버지의 얼굴에도 어느새 활짝 결핍 없는, 충만한 미소가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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