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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ELYST Oct 18. 2018

지도의 역사

국가간 교역의 출발점

지도의 기원


지도는 기하학과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홍수에 범람하지 않는 땅의 경계를 기록했던 것을 출발점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토지의 형상과 면적에 대한 측량이 초점이었고 이동의 경로까지 명확하게 표기되지는 않았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지형과 이동의 경로가 함께 표기된 지도는 기원전 200년경 중국의 전한(前漢)에서 처음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제국에서도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명을 받은 아그리파가 군사적 목적의 지도를 제작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기록으로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토지 측량


세계지도의 제작이 체계를 갖게 된 것은 150년경 그리스의 천문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서였습니다. 지구의 모양에서부터 지도의 제작 방법까지 망라한 그의 저서 '지리학'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에 이르기까지 지도 제작에 있어 절대적인 지침으로 활용됐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천체 측량 기술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지도 또한 많은 오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중국의 삼국시대에 방격법에 따라 만들어진 지도의 정확성이 더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향후 유럽의 지도 제작 방법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교역의 시작


동방과 서역 간에 교역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기원전 1세기경 실크로드가 열리면서부터였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로마제국이 지중해 연안을 통일했고 중국에서는 전한이 안정된 내치를 바탕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사이에 놓인 사막과 고원은 적극적인 교류의 장애물이었으나 이 지역에 활동하는 여러 이슬람 유목민들을 통해 전해지는 새로운 문물들은 서로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일사불란한 군사적 공동체에 가까웠던 이 유목민들은 직접적인 교역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직접적인 교역로의 개척에 먼저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인 것은 전한의 무제였습니다. 장건은 무제로부터 대월지국(현재의 아프가니스탄 북부)과 연합하여 길목을 막고 있던 흉노를 제압하라는 임무를 받아 기원전 138년 장안을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당도한 대월지국의 미온적 태도로 원래의 목적을 이루지는 못한 채 장안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건이 13년간 보고들은 서역의 정보는 무제의 불을 더욱 지펴 직접 나서도록 합니다. 마침내 기원전 60년 흉노가 토벌되자 6,400㎞에 이르는 동방과 서역의 교역로, 실크로드가 열렸습니다.


지도는 교역이 국경과 대륙을 넘을 수 있도록 해 준 첫 번째 기술적 성과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제국의 상인들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를 활용해 일정한 이동 경로를 유지할 수 있었고 전한의 상인들은 방격법에 따른 지도로부터 정확한 거리를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상인들의 교역을 통해 지리와 지도에 대한 정보들이 교환되었고 이 두 지도들은 서로의 장점을 흡수해가며 더욱 정교해졌습니다. 이 지도를 따라 중국의 비단, 종이, 화약, 도자기 등이 로마제국에 전해졌고 로마의 귀금속, 보석, 유리, 직물 등이 중국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지도와 교역의 발전


세계지도가 관심을 얻게 된 것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기점으로 대항해시대가 막을 올리면서였습니다. 그리고 세계지도 제작 방법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16세기의 지도학자 메르카토르에 의해서였습니다. 그가 창안한 메르카토르 투영법(Mercator’s Projection)은 '지구는 둥글다'는 당시 유럽의 발견과 중국 방격법의 정확성이 결합된 동서 문명의 결정체였습니다. 그는 구형의 지구에 표기된 위도와 경도를 평면의 격자로 옮겨와 지도를 표기했습니다. 물론 극지방에 가까워질수록 실제 크기에 비해 과장되어 나타난다는 한계를 가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지도 제작 방법의 하나입니다.


메르카토르 투영법


대항해시대에 들어 메르카토르의 지도는 주변에 지형지물이 존재하지 않는 망망대해에서도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물론 이 시기에 메르카토르의 지도가 제대로 활용될 수 있었던 데에는 아스트롤라베나침반이라는 항해 도구 또한 중요한 역할을 했었습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정교하게 발전하여 12세기 유럽에 들어온 아스트롤라베는 탐험가들이 천문의 관측을 통해 현재의 위치와 방향을 가늠하도록 해주었고 천문의 관측이 불가능한 낮에는 12세기경 중국의 송나라로부터 들어온 나침반을 통해 뱃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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