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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마음을 치유했던
그때 그 순간들

by 생각속의집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는 고통을 말해야만 한다. 그것은 더 건강하게 살기 위한 생존의 선택이다. 나는 상처받은 나를 흙, 책 그리고 사랑으로 되살렸다. 그 시간이 10년 간 이어졌다. 이제야 나는 온전해 질 수 있었다. 아픔의 순간이든 기쁨의 순간이든 삶의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 삶이 비록 비루한 것들 속에서 방황할지언정 언제나 우리는 삶을 희망한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 아니 잘 견뎌왔다. 그것이 살아갈 힘이 될 것이다.



마음이 아프면 몸을 움직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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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 날, 나는 남아 있는 온힘을 쥐어짜내 한 가지 일에 도전했다. 그것은 그동안 모른 척했던 부모님의 텃밭을 가꾸는 일이었다. 약을 치지 않은 흙속에는 지렁이들이 꿈틀거렸다. 아버지는 손자에게 먹일 것이라며 농약 한 방울 치지 않았다. 나는 고무신 사이로 들어오는 흙의 감촉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생명의 감촉이었다. 우울증으로 찌든 내 마음에 흙의 향기가 깃들기 시작했다.


나는 장갑도 끼지 않고 양말도 신지 않은 채 밭일을 할 때가 많았다. 실은 발가벗고 흙에 구르고만 싶었다. 그래야 내가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치 식물처럼 나도 초록으로 자라고 싶었다. 그렇게 생명을 키우는 기쁨을 조금씩 알아갔다.


진실로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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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집에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88세 농부가 살았다. 그는 평생 농사만 지었다. 할아버지는 나를 보면 자주 웃었다. 그에게 꾸뻑 인사할 때마다 나는 거대한 나무에 인사하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의기양양했다. 자기 생에 아무 부끄러움이 없는 듯 보였다. 본받아야 할 사람은 헛기침이나 하던 비겁한 교수들이 아니라 저 나이든 농부였다.


할아버지의 농사일에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교향악처럼 조화롭고 균형감이 넘쳤다. 그가 키운 것들은 그를 닮아 태양 앞에서도 떳떳했다. 그것은 자기 안에서 자연스레 샘솟는 의기였다. 그 의기가 매번 부러웠다. 진실로 살아 있다면, 지상에서 저렇게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면 아무 부끄러움도 없을 것이다. 그 당시 나는 무엇이 부끄러웠던 걸까? 자존감 같은 단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었다. 내가 개미보다 못한 존재로 느껴졌다.



책읽기가 나를 치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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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게 짓누르던 부끄러움을 집어던지고, 나는 드디어 근처 읍내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 도서관을 찾았다. 도서관에는 나를 채워줄 책들이 줄 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치유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책들이 내 앞에 펼쳐져 있있다. 모든 책들이 이제야 왔느냐며 나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읽고 또 읽었다. 책속에서 내 막다른 인생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매일 순교자가 신의 섭리를 깨치듯 치유서들을 하나씩 읽어나갔다. 몇 년간 그렇게 많은 치유의 책을 영접했다. 책들이 내 정신을 새롭게 설계했고, 다시 삶을 꿈꾸게 했다. 가끔 서울에 올라갈 때면, 새로 나온 치유서들을 샀다. 누구도 만나지 않고 다만 책을 사서 돌아올 때도 많았다. 나의 책꽂이에는 치유서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책들이 채워질수록 내 정신도 점점 정밀해갔다.



치유하라, 회복하라, 성장하라



나에게 명하는 책들이 나의 든든한 배후가 되었다. 하나같이 조지 베일런트의 저서들처럼 비전으로 가득 찬 책이었다. 책이 전한 비전을 하나씩 펼쳐 그것에 나를 복종시켰다. 깊은 자성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갔다.



▶ 문학치료사 가 전하는 힘들고 아픈 사람들을 위한 상처회복 에세이 <살아낸 시간이 살아갈 희망이다>의 일부분입니다. 이 책은 상처 입은 영혼에서 문학치료사 되기까지 저자가 겪은 상처와 치유의 내밀한 고백으로 힘든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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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근, <살아낸 시간이 살아갈 희망이다> https://c11.kr/94s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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