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치료사 박민근이 들려주는 상처와 치유의 이야기
벌써 15년이다. 나는 새벽마다 책을 읽는다. 개심(改心) 이후 밤 9시에 잠들어 다음 날 이른 시간에 깨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이 시간은 소중한 독서시간, 글쓰기 시간이다.
새벽마다 눈을 비비며 정성스럽게 책을 편다. 그리고 글을 쓴다. 이는 내게 가장 진지한 일이다. 아무 방해받지 않는 이 절대 시간에 나는 정갈한 마음으로 책이 있는 방의 문을 들어선다. 책들이 때로 방문을 열고 먼저 나를 반긴다. 나는 내 옆에 책이 있으므로 늘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새벽의 독서는 깨끗한 의식에 뜨개질을 한다. 새벽 독서가 가진 커다란 장점은 책의 한 줄, 한 줄이 대지를 향하는 빗방울처럼 아름답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나의 내면은 그동안 그 비를 맞고 자랐다. 새벽에 들어서는 책의 방들은 대부분 안락하며, 영혼을 씻겨주는 밝은 빛이 가득하다. 당연히 그것으로 내 의식은 생이 주는 통증을 줄여주는 약초들을 캐서 말려왔다. 새벽의 읽기는 마음의 병에 잘 드는 ‘책 약’을 발견하고, 준비하고, 제대로 이해하는 시간, 나 스스로를 깨우고 정돈하는 시간이었다.
삶은 고뇌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스캇 펙은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인생은 고통이다(Life is difficult)’라는 말로 책을 연다. 이 한 줄에는 여러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인간이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뜻도, 생의 걸음 걸음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진실도 담고 있다. 혹은 한 번 주어지는 이 삶을 아깝지 않게 사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뜻도 있다.
인생이 고통일 수 있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우리는 누구나 상처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
하나의 사건조차 사람마다 상처의 깊이가 다를 수 있다. 사건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만, 상처는 주관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박사 진학을 할 수 없게 된 일이 내게는 큰 상처였으나, 초등학교만 겨우 나온 나의 부모에게는 공감하기 어려운 병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일로 사람이 이렇게까지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많은 걸 배웠는데 무언들 못하느냐”는 말도 틀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확실히 무척 아팠다. 아픔의 실체가 있었다. 너무 아파 나의 존재를 없애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어떤 상처라도 존중받아야 한다. 병든 꽃에는 미풍조차 고난일 수 있다. 때문에 어떤 상처도 섬세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치유는 상처를 가감 없이 수용하고, 지금보다 나은 의식을 가다듬을 때에 가능하다. 먼저는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당신의 의식이 글러먹어, 그 상처 역시 가짜일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가장 폭력적인 생각이다. 그러니 상처 입은 사람을 대면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레 “많이 아팠니?”라고 물어야 한다.
나는 여전히 이 질문에 답하는 중이다. 지나고 보니 치유의 길은 여러 갈래였다. 로마로 가는 길은 많았다. 나는 길 위에서 치유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설익은 지식으로 만용을 부리는 자들도 적지 않았지만, 소명을 갖고 그 길을 탐색하는 사람도 있었다. 미술을 통해 치유의 길을 궁구 하는 사람도 있었고, 음악이나 무용으로 치유의 방법을 찾는 치유자도 보았다. 치유적 운동이나 동작의 중요성을 말하는 이들도 있었고, 숲이나 원예 활동이 놀랄 만큼 대안임을 알려준 사람도 있었다.
나는 책과 문학에 많이 익숙했던 사람이고, 그래서 책을 통해 치유를 얻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책, 문학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독서치료사가 되기까지 많은 만남과 회복이 있었다. 나는 30대 중반까지 1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쳤고 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그때마다 마광수에게 배운 문학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얻는 방법을 아이들에게 알려주었다. 공부를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문학을 통해 자신감을 되찾는 것을 수없이 목격했다. 함께 문학작품을 읽고, 인생목표를 세우다보면 마음이 아픈 아이들도 어느새 공부에 대한 열의를 회복할 때가 많았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기억이었다.
내가 가장 감사한 것은 책이다. 세상 모든 책이 이어져 있다고 한다면 책이야말로 신의 현신이다. 나는 책에 힘입어 성장했고, 지금도 성숙의 단계를 밟고 있다. 고흐에게 그림이 그랬듯 책은 언제나 내게 전부에 가깝다.
나는 책이 지닌 힘을 믿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책이 있다. 침묵을 즐기는 현자조차 책만은 남기는 법이다. 현자가 지상을 떠나도, 우리가 구한다면 그 온전한 육성을 체험할 수 있다. 책은 언제나 아픈 지상에 남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이 남긴 좋은 책을 찾아 읽는 일은 보석을 닦는 것처럼 귀한 일이다. 우리는 책이 아니라면 타인의 마음을 거의 느낄 수 없다. 좋은 책이란 수십 번 퇴고를 거친 〈데미안〉처럼 우리 의식을 안전하게 인도하는 사신이다. 그 안전한 인도만이 치유의 길을 열고 잘려진 마음들에 다시 걸음마를 가르칠 수 있다. 그러니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우리 삶에는 책이 있어야만 한다.
책 가운데 특히 치유서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의 상처가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처 받기 쉬운 세상에 던져졌다. 이제 공기청정기처럼 치유서는 필수품이다. 그러니 치유서를 읽지 않고 하루를 산다는 것은 위험한 거부와 같다. 마음과 생각에 암을 키우는 일이 분명하다.
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는 사람들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정이 너무 취약하고, 위축되거나 사라지기 쉬우며, 공간과 시간과 불완전한 연민, 그리고 가정과 애정 생활의 온갖 슬픔으로 짓눌리기 쉽기 때문"이라고 했다. 불완전한 삶에 선한 보충이 필요하다. 이는 치유의 힘을 가진 책, 문학작품이 아니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나는 오늘도 상담실에서 마음이 아픈 분들을 만난다.
그들의 상처에 귀 기울이면서 그들을 치유해줄 한 권의 책을 떠올린다.
세상 어딘가에 당신을 일으킬 책이 있다.
.......
내 옆에 책이 있다면 아직 희망은 있다.
- 박민근, <살아갈 희망이 살아갈 희망이다> https://c11.kr/az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