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힐링 열풍이 뜨거웠던 적도 없습니다. 수많은 광고에서도 힐링을 들먹이며 어서 상처를 치유하라고 권합니다.
삶이 그렇게 완전무결할 수 있을까요? 상처가 없어야 꼭 완벽한 삶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생로병사의 여정에서는 기쁜 일도 슬픈 일도 하나의 삶입니다. 또 상처가 많든 적든 그것도 삶의 일부분입니다. 따라서 힐링도 필요하겠지만 삶의 모든 것을 힐링에 맡겨두는 것은 현명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상처에만 집중해서 현재의 소중함을 놓쳐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리적 문제들과의 투쟁에 사로잡혀 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으려면
고통이 줄어들어야만 한다고 믿으면서 고통이 줄어들 때까지 삶을 유보한다.
스티븐 헤이즈와 스펜서 스미스가 공저한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고통이나 상처에만 모든 의식을 집중할 때, 자신의 거의 모든 에너지를 고통을 치유하는 데에 써버린 결과, 정작 현재의 자기 삶을 꾸려갈 에너지가 턱없이 부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상처를 완전무결하게 치유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한 시도입니다.
완벽한 치유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며, 또 한정 없이 과거에 매달려서 정작 소중한 현재의 삶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보다 더 소중한 과거는 없습니다.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일도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들이 현재의 삶을 가로막아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상처의 기억 때문에 유보시킨 현재의 삶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한 번의 상처로 끊어버린 관계, 포기한 꿈, 지워버린 즐거움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요? 혹시나 과거의 상처에 매달려서 아직도 삶의 현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이제는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과거의 상처에만 잔뜩 힘을 들이지 말고 지금 여기의 삶 속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크나큰 상실의 상처를 겪게 되면 대략 10퍼센트 정도의 사람이 병적 징후를 보이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예전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이때 예전의 삶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상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삶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비록 상처의 기억은 남아 있어도, 더는 과거의 상처 때문에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그 상처의 기억을 안고 새로운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과거를 치유하는 또 다른 문은 현재의 삶 속에도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금껏 싸워온 심리적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문제들이 어떤 형태로 남아있는 당신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데 더 이상 방해되지 않는다면, 무엇이 그리 중요하겠는가?
-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채정호, <이별한다는 것에 대하여> https://c11.kr/99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