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사장이 되고 난 후, 내게 새로운 시선이 생겼다. 카페나 식당을 방문하거나, 남의 집에 초대를 받으면, 그 공간에 있는 책장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엔 '내가 읽을 만한 책이 있나?' 하는 정도로 책을 둘러보았다면, 이제는 책장을 보면서 그곳 주인의 취향과 관심사를 읽게 된다.
얼마 전, 집 근처 카페에서 읽을 만한 책을 고르기 위해 책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책장에 꽂힌 책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나는 내심 놀랐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책장을 꽉 채우고 있는 게 아닌가. 카페 주인과는 몇 년을 봤지만 긴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책장을 보니 그의 관심사와 취향이 보이는 것이다.
'이 사장님은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구나. 나이 드는 것, 요리에도 관심이 있나 보다.' 평소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을 꺼내 읽기도 하고, 내가 모르던 책도 살펴보았다. 긴 얘기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왠지 카페 주인이 친숙하게 느껴졌달까?
아지트로 삼은 파스타 집이 하나 있다. 돼지우리를 개조한 거라곤 믿기 어려울 만큼 멋진 이탈리안 음식점. 나는 가게 구석에 놓인 책장을 탐하기 시작했다. 사진 관련 책들, 동물보호 관련 잡지, 음식 외서들과 여행책들. 가게 사장님은 사진작가이자 이탈리안 음식 요리사이고, 유기견 바닐라를 키운다. 책장이 그 사람을 말해주고 있었다.
제주에 살지만 가끔은 집 밖을 나와 나만의 시간을 가질 때가 있다. 그렇게 자발적 가출을 감행하곤 한다. 짐을 싸서 차로 20분 걸리는 숙소에 왔다. 책방에서의 인연으로 알게 된 숙소다. 숙소 사장님과 인연을 맺은 이후 이 곳에서 열리는 공연 초대를 해주셔서 밤에 방문해본 적은 있는데 숙소엔 처음 머물러 본다. 이 숙소 거실에는 역시 책이 한가득이다. 정말 오래된 시집부터 장애인, 인권, 여성에 관한 책들이 책장을 채운다. 알고 보니 이곳은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는 주인장이 운영하는 공간이었다.
집을 나서 서쪽으로 멀리 가봤다. 제주에도 생긴 코워킹스페이스(공유 작업공간)였다. 단독주택 1층을 작업실로 꾸며놓았다. 한쪽 구석에는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는 바가 있고, 한쪽 책장에는 책이 가득이다. 그런데 내게 익숙하지 않은 책들이 많다. 시집, 소설, 문학냄새가 가득한 책들. 평소 내가 읽던 책들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알고 보니 작업실 주인장은 시를 쓰는 사람이었다. 아무나 이용할 수 없는 작업실. 주인장의 면접을 통해야만 이용할 수 있는 작업실이다. 나는 이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나와 결이 같은 사람이 나처럼 이 공간에 머물기를 바라는 그 마음.
얼마 전 읽었던 책 <슬픔의 방문>에서 장일호 작가는 소개팅남의 독서 안목과 취향을 확인하기 위해 책선물을 서로 교환하자는 제안을 한다. 난 그 글을 읽고 피식 웃었다. 그것만큼 상대방을 면밀히 알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을까. 때로는 책 한 권이 그 사람을 말해주기도 한다는 걸.
우연히 동네 가게의 컴퓨터 모니터에 띄워져 있던 구절이 생각난다.
"you are what you re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