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귤을 따러 갔다가 오랜만에 콩국을 먹었다. 이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제주 콩국은 마치 직접 만든 몽글몽글한 맑은 순두부찌개처럼 생겼다. 무와 배추를 넣고 끓이다가 날콩가루를 풀어서 만든 제주 전통 음식이다. 육지 사람들이 보면 직접 만든 순두부로 만든 찌개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제주에서는 주로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에 콩국을 먹는다. 특히 오늘처럼 강풍이 몰아치는 추운 겨울날, 귤밭에서 귤을 따다가 먹는 콩국은 꿀맛이다. 속이 따뜻해지면서 든든해지니까.
이 콩국을 처음 먹었을 때 얼마나 감동했던지. 아니, 세상에 이런 음식이 있었다고? 웰빙, 비건을 외쳐대는 요즘, 이거야말로 진짜 건강식이고 자연식이다.
무, 배추, 날콩가루. 단 세 가지 재료. 제주에 흔한 겨울 식재료로 만드는 음식이다. 소금만 넣어 간한 담백한 맛. 맛이 강하거나 특별하지 않다. 무와 배추, 콩의 조합으로 만든 고소하고 건강한 맛이다. 이 콩국은 주로 제주 할머니들이 만드신다. 그래서 점점 사라져가는 제주 음식 중 하나다. 식당에서 좀처럼 판매하지도 않는다. 할머니들이 어렸을 때부터 먹고 자란 음식이라 제주 시골 밥상에서나 겨우 맛볼 수 있다.
식재료가 세 가지라 조리법이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노하우가 필요한 꽤 어려운 요리다. 불이 너무 강하면 냄비에서 끓어 넘치기 일쑤고, 불이 약해 오래 끓이면 콩비린내가 날 수도 있다. 불 조절이 정말 쉽지 않다.
오늘, 귤밭 주인 언니가 점심때 콩국을 만들어 줬다. 함께 귤을 딴 언니들에게도 익숙한 제주 음식이다. 언니들의 엄마가 해주던 음식이니까. 나는 언니들에게 이 콩국이 육지에는 없는 귀한 음식이라고 알려줬다.
귤밭에서 먹는 따끈한 콩국 한 그릇. 이 맛이 언제까지 남아있을까? 제주 겨울의 차가운 세찬 바람과 함께 이 맛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그래서 올겨울에는 나도 콩국 만들기에 도전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