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어 같은 제주어

by 하우스노마드 키라

제주 할머니들과 함께 귤을 딴 지 며칠이 지나도,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여전히 어색함이 묻어났다. 게다가 할머니들은 내 이름 대신 "양~!"이라고 불렀다. 내 귀에는 그 말이 마치 "야!"처럼 들렸다. 나 이름 있는데, 왜 자꾸 '야'라고 부르는 거지? 어떤 날은 '저 이름 있는데요'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참고로, "양"은 제주에서 "저기!"하고 부르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제주 할머니들 눈에 내가 꽤 마음에 들었나 보다. 어느 날부터 내 이름을 불러주셨고, 할머니들은 내게 소소한 것들을 챙겨주시기 시작했다. 집에 가는 길에 차로 태워다 드리면, 다음날 바다에서 직접 캔 돌미역을 빨아서 먹기 좋게 주시고, 또 어떤 분은 서귀포 오일장에 가서 작업 바지를 내 것까지 사서 몰래 챙겨다 주시고, 집에서 직접 기른 콩이며, 밑반찬까지 챙겨주셨다.


귤 따는 건 생각보다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손이 꽤 빠른 편이라서 할머니들과 함께 귤 따는 데 피해를 주지 않을 정도의 실력은 됐던 것 같다. 하지만 귤 따는 것보다 힘든 게 있었으니 그건 언어였다.


바로, 외계어 같았던 제주어.


특히 함께 귤을 땄던 제주 할머니들은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제주라는 섬을 떠나본 적이 없는 토박이들로 제주사투리의 끝판왕이었다. 처음 며칠은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묵묵히 귤만 땄다. 마치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귤을 따면서 할머니들이 서로 말을 주고 받는데, 도무지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의 대화에 낄 수가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한국말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심정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아는 제주어는 '소랑햄수다(사랑합니다)'가 전부인데, 할머니들이 쓰는 이 제주어는 마치 외계어 같았다.


내가 제주 할머니들과 귤따러 다닌다고 하니 주변 육지 지인이 내게 조언을 한다. 어차피 귤밭에 가봤자 할머니들이 하는 말은 하나도 못알아들을테니 이어폰을 챙겨가서 팟캐스트를 들으라고 했다. 아마도 그것이 육지에서 온 이주민들이 귤밭에서 가장 많이 느끼는 이질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귤을 따다 보면 '동드래로 갑써!(동쪽으로 가세요)' 라고 반장 이모가 소리를 지른다. '동드래?(동쪽)' 당연히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니 눈치껏 할머니들을 따라간다. 나중에 알았다. 동드래가 동쪽이라는 것을. 동쪽으로 가라고 하면 되지, 왜 동드래일까? 북쪽이라고 하면 되지, 한라산 쪽이라고 한다. 그런데 대체 한라산은 어디 있는 거야? 한라산 찾느라 나만 혼자 바쁘다.


하지만 여기서 할머니들과 어울리려면 그들의 언어를 알아야 했다.

그래서 할머니들이 대화할 때마다 어렴풋하게 내 귓가에 들리는 단어들을 할머니들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고랐어~'는 무슨 뜻이에요?

'동드래, 서드래'는요?

'영장'은 또 뭐예요?


다행히도 할머니들은 손녀딸에게 처음 말을 가르쳐 주듯 제주어를 친절하게 하나씩 알려주시기 시작했다.

귤 따러 다닌 1년 동안, 할머니들 덕분에 나는 제주어를 빨리 배울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어느 정도 알아들어 제주어 통역은 가능한 데 여전히 말하는 건 어색하다. 그럼 이제 제주어 잘하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리스닝은 되는데, 스피킹이 안되는 상황이랄까? 한국에 오래 산 외국인이 하는 한국말이 여전히 어색한 상태 말이다.


처음엔 외계어 같았던 그 제주어.

그런데 뜻을 하나둘 알게 되면서, 그 특별한 제주어의 아름다움에 물개 박수를 치곤 한다.


무사, 기이, 자락자락, 송키, 놈삐, 독새기, 새우리, 오치비, 용심…


제주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책에서만 보았던 '언어는 곧 문화이자 삶'이라는 말이 비로소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제주어에 받침도 없고 말이 왜 짧은 줄 알아요? 그건 제주에 바람이 하도 많이 불어서 다 날아가버려서 그런거래요.” 라며 농담을 하기도 한다.


제주어를 하나둘 알아듣기 시작하면서, 할머니들과의 대화도 조금씩 길어졌다. 귤을 따면서 '기이?' 하며 공감하는 추임새도 넣어주고, 내 서툰 제주어를 들으며 할머니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도 많아졌다.


처음엔 낯설기만 했던 이곳 제주에 나는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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