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동
이미 출산 경험이 있거나 예민한 산모라면 16주에도 태동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배속에 물고기 한 마리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던데. 남자인 나는 다시 태어나야만 알 수 있는 느낌일 거다. 초산인 경우 빠르게 느끼기는 어렵다고 하지만 우리도 혹시 몰라하고 16주부터 태동을 기다렸다.
태동을 빠르게 눈치채기란 쉽지 않다. 아직 아기는 작기에 창자 움직이는 소리, 숨 쉬며 횡격막이 오르내리는 움직임, 복근의 수축처럼 엄마 배가 움직이는 탓에 아기가 움직이는 게 맞는지 알기가 어렵다. 양수와 두꺼운 피부로 바깥에서 느끼기는 더욱 쉽지 않다. 지난주에 아내가 '오 움직인 것 같아..!'라고 했고 그날부터 자기 전에 함께 태동을 기다린다.
나는 아직 제대로 부풀어 오르지도 않은 배에 손을 얹고 뱃속 움직임에 주의를 집중한다. 들숨 날숨으로 아래위로 움직이는 와중에 배꼽 아래로 불규칙한 리듬으로 무언가가 올라왔다. 다시 들어간다. "맞아?" 하고 아내를 보면 "아니 내가 움직인 거야~ 내 복근" 하고 내 기대를 실망시키기 일쑤다. 그러다 정말로 부인할 수 없게. 1~2 센티쯤 되는 무언가가 툭 튀어나와서 내 손을 밀어낸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거야 말로 아내와 다른 생명을 가진 무언가가 뱃속에 있는 것이라고. 초음파 같은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살아 있음을 알 수 있는 첫 번째 상호작용이었다고.
그날 이후로 밤마다 나는 아내의 배에 손을 얻고서 아기에게 잘 들리는 낮은음으로 '태동~' 하고 요청한다. 운이 좋은 날은 금세 내 손을 밀어내기도 한다. 내가 손을 올리고 말을 하면 더 잘 움직이는 것 같은데, 손이 무거워서 그런 건지 손에서 울리는 소리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는 날도 있다. 태동을 느끼고 싶다고 너무 욕심부려 괴롭히지는 말아야지 하면서. 내일을 기약하는데 아쉽긴 하다.
태동은 아기가 잘 크고 있다는 신호다. 이제 새로운 생명이 되었다는 증명. 아빠가 아이와 할 수 있는 최초의 상호작용. 나중에 질리도록 하겠지만. 지금은 한 번의 태동이 신기하고 궁금하고 좋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