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니쳐 메뉴, 근데 다 맛있어서 별로야?
시그니쳐 메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주목받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희 형제가 여러모로 다른데, 이런 부분은 비슷합니다.
그런데 또 만드는 것들은 특이하게 만들거든요.
새로운 것, 맛있는 것을 만드는 자체를 즐거워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장사를 한다는 것은 그런 게 아니죠. 그래서는 안 됩니다.
취미생활이 아니니까요.
저는 SNS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미지보단 텍스트를 좋아하고 자랑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저에게 인스타그램은 무척이나 어려운 미디어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SNS에 무척이나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먹고사는데 많은 도움을 주거든요.
한 번은 일을 마치고 동네 작은 주점에 늦은 저녁을 먹으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워낙 작은 가게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잘 들리는 곳이었는데
연인이 대화하는 걸 들었어요.
‘자기야. 나 이거 먹고 싶어'
‘이게 뭔데? 오렌지? 마트에서 사 먹어’
‘이거 치즈케이크야’
지금은 많이 나았지만 직업병이 심할 때라 커피, 케이크 이런 말을 들으면 바로 눈이 돌아갔습니다.
저희 매장에서 만든 케이크였어요.
순간 ‘안녕하십니까. 제가 그 카페 사장입니다. 제 동생이 만들었어요'라고 하고픈 생각이 들만큼 반갑고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이후에 검색해보니, 온라인 상에 여러 후기들이 있더라고요.
먼 훗날 수요미식회에 저희의 디저트가 소개된 이후에는 후기도 더 늘었고, 레시피도 유투브에 올라왔습니다.
물론 저희 레시피와는 많이 달랐지만 그만큼 관심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노력이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시그니쳐 메뉴는 그 가게에서만 먹을 수 있는 대표 메뉴를 뜻합니다.
요즘은 손님들이 먼저 ‘이 집은 시그니쳐 메뉴가 뭔가요?’라고 물으시는 경우도 있어요.
메뉴판에 표시를 하는 경우도 있고요.
가게의 정체성과 실력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카페 창업에 있어서 시그니쳐 메뉴의 개발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일단 쉽지가 않습니다.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오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메뉴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시그니쳐 메뉴는 맛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다름을 전달할지가 중요합니다.
시그니쳐 메뉴는 매장에 대한 만족감을 높여서 재방문을 이끌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단순히 ‘우리 매장엔 이렇게 맛있는 걸 판다'를 알려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상적인 시그니쳐 메뉴는 맛의 차이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플레이팅, 테이블웨어, 퍼포먼스, 서비스 방식을 통해서 매장에 대한 정체성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최상의 상태로 커피를 즐기게 해 주기 위해서 고객의 앞에서 커피와 우유를 섞어주거나, 커피 맛에 따라 다른 모양의 잔을 제공한다거나, 특정한 메뉴는 처음부터 시킬 수 없다거나 등 다양한 경험을 설계하는 것으로 시그니쳐 메뉴를 전달한다면 단순한 맛의 차이보다 더 강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 맛있어서 별로야.
스마트폰의 보급이 활발해지면서 카페나 식당에 대한 정보를 찾기가 수월해졌습니다.
처음에는 블로그나 카페에 올라온 후기를 참고했는데, 나중에 맛집을 소개하는 어플이 쏟아져나왔습니다.
저희는 이런 덕을 조금 보긴 했어요.
일단 리뷰가 적지 않았고, 평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홍대에 가면 꼭 들러야 하는 디저트맛집 top50
몽블랑맛집 00
빙수맛집 00
같은 어플 자체의 어워드에도 자주 선정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 시킬 수 없기에 호평만 있을 수는 없겠죠.
때로는 잘못된 정보나 오해 같은 것이 있어서 속상한 적도 있었지만 또 좋아해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힘이 나기도 했습니다.
세간의 이런 평가들을 보고 꽤 많은 분들이 와 주셨고, 단골이 되어주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분들께 저희가 가진 장점은 무엇인지 물어보곤 했는데 주로 이런 평가를 해 주셨습니다.
‘이미의 디저트나 음료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딱 좋은 당도라서 좋다’고
이승림 쉐프는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했었어요.
‘사람들이 맛이 있으면 달다고 안 느끼고, 맛이 없으면 달다고 느낀다.
적당한 당도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맛있게 받아들일만한 다른 요소, 향과 식감, 밀도 등이 조화로우면 같은 양의 설탕이 들어가도 과하지 않게 생각한다.’며
이렇게 밸런스를 맞추는 것인데 어떤 경우는 자세히 설명을 해 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달리 말하자면 임팩트가 약하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호기심에 찾아본 이미에 대한 리뷰 중에 이런 내용이 꽤 있었습니다.
‘대부분 다 맛있다.그래서 기억에 선명하게 남지 않는다.’
‘많이 달지 않아서 여러 개를 먹게 되는데 버릴 타선이 없는데 임팩트가 적게 느껴져서 특별하게 기억나는 게 없다.’
‘맛있는 것은 확실한데, 또 땡기진 않을 것 같다'
조화로운 것, 균형잡힌 것은 누군가에겐 심심한 느낌을 주죠.
이런 평가들은 점차 저에게 많은 고민을 갖게 했습니다.
다 잘한다고 무조건 잘 되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다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하는 것을 잘 알리는 게 더 중요하더라고요.
실제로 한 두가지 장점을 잘 드러냄으로서 매장을 강렬하게 인식시키고 그렇게 기반을 다져서 확장하는 사례들도 많이 있습니다.
어느 덧. 이미커피는 한 자리에서 10년이라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세월에 장사없다고 어떤 노력도 매장이 낡아가는 것을 막기는 어렵습니다.
매년 매달 매해 새롭게 등장하는 멋있는 매장들 사이에서 고객들의 선택을 받기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특별한 전략이 없었습니다. 선명한 컨셉도 없었습니다.
그저 맛과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손님에게 친절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많은 매력과 화제성을 갖고 있는 매장이었는데, 그 때는 그것을 살리는 방법도 몰랐고, 의지도 약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온몸으로 견디었던 결과로 얻어낸 실력과 이미를 아껴주는 많은 사람들을 얻게 된 것은 오래된 매장만이 가질 수 있는 보상인 것 같습니다.
더불어 배운 것들이 참 많았는데 수업료는 정말 어마어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