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안 되는 것만 얘기하죠?
어떻게 집으로 가자고 재촉하나 고민하며 뒤돌아서려는 순간, 엄마가 화낼 것이라 생각했던지 조용히 엄마 뒤를 따라온 별아이. 마음이 왈칵한다. 눈물이 찔끔, 널 꼭 껴안고 내 마음을 두드렸다.
엄마가 안된다고만 해서 너무 미안해
마음껏 놀이터에서 놀지도 못하고
마음껏 공원에서 산책하지도 못하고
들어가자고만 해서 너무 미안해
두찌가 낮잠을 자면 별아이와 산책을 한다. 놀이터도 갔다가 공원도 갔다가 마트를 가기도 하고 카페에 가기도 한다. 요즘 몸이 허해진 건지 그냥 두찌따라서인지 유모차를 타고 싶어 하는 별아이다. 안된다는 말 대신 키가 좀 커도 탈 수 있는 유모차를 끌어주는데 이걸 타고 잠드는 재미가 쏠쏠한가 보다. 밖으로 나가자 해놓고 잔다. 자는 동안 기다렸다가 깨면 놀이터를 가고 싶어 하는데 문제는 시간이다.
두찌가 안에서 잘 동안 본인도 밖에서 자게 되는 건데 두찌가 깰 즈음엔 엄마가 들어가서 봐줘야 한다. 그런데 별아이는 ‘깰 즈음’부터 놀이터를 가자하니 밖에 있는 엄마는 집 안의 두찌가 신경 쓰이고, 안된다고 하자니 자고 일어나자마자 들어가야 하는 별아이가 안쓰럽다.
한 날은 얘기한 적이 있었다. 잠에서 깬 두찌가 신경쓰이고 그냥 들어가자니 너에게 미안한데 이를 어떻게 하면 될지 엄마는 너무 고민스러워. 그런데 넋두리 같았던 그 말에 뜻밖의 대답, 아니 뜻 이상의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
놀이터까지 가지 말고
가는 길에 한 바퀴 요렇게 돌아서
집으로 가요.
어머, 진짜 그래도 돼? 양보해 줘서 고마워. 얘길 꺼낸 엄마가 미안하다.
그리고 고마운데 이걸 고마워해도 될지 모르겠다.
너를 그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게 해 주겠다던 세상 큰 포부로 널 만났다. 어디든 데려갈 수 있다 생각했고 뭐든 해 줄 수 있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를 키우겠다 자신만만 혹은 굳은 결심으로 살고 있었는데 두찌가 태어나면서, 우리들의 시간 블록을 서로에게 맞추면서 그 포부를 지키기가 쉽지 않아 졌다.
소소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은 매일인데 하지 말라는 것만 얘기하는 잔소리꾼 엄마가 되어있다.
딸,
엄마가 요즘 하지 말라는 것이 많지?
그런데 사실
세상에는 하지 말라는 것보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다?
엄마는
몇 가지 하지 말라는 것만 얘기했어.
너한테 하지 말라는 것들만 있는 것처럼
들려진 것 같아서
엄마 마음이 너무 무거워.
기억해 줘.
세상에는
네가 하지 말아야 하는 일보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고
그 많은 일들이
널 기다리고 있다는 걸
사실 이 이야기는 언니 것을 초토화시키는 꼬마 무법자에게도 해당된다.
첫째와 달리 두찌는
안돼! 안돼요! 를
훨씬 빨리, 그리고 많이 듣는다
일종의 어른들이 말하는 눈치보기를 이미 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어떤 행동을 할 때 이것이 안될 것 같음을 미리 아는 건지 먼저 어른들을 살피고 행동을 한다. 하아, 미안하다 아가야.
이제부터 두찌가 뭔가를 할 때는 먼저 안된다는 얘기보다는 한 박자 쉬어주고 얘기한다. 가족 간의 룰이다. 위험해서, 언니 것이어서, 등등의 이유겠지만 벌써부터 자신의 행동에 눈치를 보게 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행동 하나를 시작하는데 많은 고민을 하게 해서는 안된다.
아이들의 행동이나 심리는 각도기의 시작 각도와 같아서 먼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는 이 작은 차이가 아주 큰 행동의 차이이자, 자아로 연결된다. 좋은 것은 좋은 대로, 나쁜 것은 최소한으로. 지금 시기가 매우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엄마의 어깨가 더 무거운 요즘이다.
엄마도 사람인지라 하루하루 실수 안 하길 바라며 노력하고, 반성을 하며 잠자리에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기도한다.
하나님,
오늘의 실수가
별아이에게 새겨지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한 번은 고관절이 아파 땅에 앉을 때 다리를 펴고 앉는 엄마 위로 별아이가 침대 위에서 점프를 한 적이 있다. 정말 너무 아파서 악! 소리를 질렀다. 아이는 자신에게 화를 내는 줄 알고 속상함을 토로했는데 나의 의도와 전혀 다른 뜻이어서 달래고 미안하고 또 달랜 적이 있다. 그럴 때는 솔직하게 얘기하고 놀래게 해서 미안하다는 것, 그리고 진심은 이러하다-정말 너무 아팠다는 사실- 구체적인 설명이 꼭 필요하다. 물론 일주일 내내 다리 전체가 저리고 아파 침을 맞고 다리를 절며 걷긴 했지만, 설명을 잘해 주는 것은 중요하다.
안된다는 말에는 설명이 필요한 시기이다. 당연히 엄마 입장에서는 안된다는 것에 많은 이유가 있지만 아이는 아직 당연히 그 이유를 이해하기엔 어린 시기이다.
한편으론 아이들의 육아에 가사에 마음이 조여 오고 여유가 없어져서 ‘안된다’는 말 안에 모든 말을 구겨 넣고 아이에게 삼키라 강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도 하나의 인격체다.
함부로 대해선 안 돼.
마음이 너무 힘들 때 친정엄마의 답변에 혼쭐이 났다. 그런 시기가 있어, 하고 위로는커녕 내 아이를 함부로 대하는 건 부모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하나의 인격체를 존중해야 한다고 찐하게 혼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대화를 끝으로 나는 부끄럽게 혹은 멋쩍게 나를 돌아봤다. 내가 여유가 없다고 아이에게 대하는 양육자의 태도를 변덕스럽게 바꿔서는 안 된다.
첫째,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자유를 줄 것
둘째, 안된다는 것에 대한 이유를 줄 것
셋째, 변덕의 이유는 본인에게서 찾을 것
맞잡은 손이 야무지다. 오늘도 오늘의 시간이 간다. 어제의 아쉬움보다 오늘, 지금 이 순간 함께하는 희락이 더 값지다. 딸, 오늘이 요 이쁜 손가락으로 어떤 일을 할 건가요? 장난기 가득한 그 미소에 미소의 답을 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