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여행과 노동의 찬란한 케미스트리
프리랜서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색다른 장소에서의 노동을 꿈꿀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고양이 세수를 한 다음, 침대에서 몇 발짝 걸어가 책상에 앉는 것으로 출근이 끝나는 나와 같은 ‘가정 프리랜서'라면 특히 더 그렇다. (가정 프리랜서는 ’한 가족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의 가정(家庭)과 프리랜서를 결합해 만든 용어다. 사무실 없이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를 지칭할 말이 필요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프리랜서와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는 많이 다르단 말이다.)
나에게 ‘색다른 장소'라 함은 기껏 해야 집 근처 카페 정도를 의미했다. 평일 낮에 나를 만나고 싶다면, 집 근처로 찾아와 전화하면 된다. 열이면 열, 집 아니면 집 앞 카페에 있을 테니까.
그런데 얼마 전, 이렇게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인간 앞에 ‘여행 노동'이라는 신세계가 열렸다.
나는 ‘한 달 살기’ 여행 트렌드에도 심드렁하던 사람이었다. 한 달 살기는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때마다 해외 곳곳으로 여행을 떠나던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진 트렌드다. 마침 재택근무도 도입됐겠다, 해외여행을 떠날 돈으로 국내 여행지에서 긴 시간 머물며 일상을 보내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일을 병행하는 여행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노동은 자고로 책임감과 부담감을 비롯한 온갖 종류의 에너지를 투입해야 하는 활동이다. 즐겁기만 해도 모자랄 여행에 굳이 고단한 감정을 끌고 갈 필요가 없지 않은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출장을 경험해본 적 없는 나는 ‘여행지에서는 일할 수 없다’는 강력한 관념을 갖고 있었다.
여행과 노동의 케미스트리에 빠져버린 건 프리랜서로서 떠났던 전라북도 전주로의 첫 출장에서였다. 여행지에서 일하기가 죽도록 싫었던 나는 출장 2주 전부터 여행지에서 최소한의 일만 할 수 있도록 스케줄을 미리 조절했다. 숙소도 일부러 출장지와는 거리가 있는, 관광으로 유명한 전주한옥마을 안에 잡았다. 짐도 여행지에서 입을만한 옷들로만 바리바리 챙겼다. 출장 전날 밤은 전주의 유명 관광지, 맛집 등을 검색하며 지새웠다.
출장 첫째 날, 관광객이 와글와글한 콩나물국밥집에서 점심을 해치우고, 전주에 오면 꼭 들러야 한다는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은 이틀간 여유롭게 전주 여행을 즐기려면, 첫날은 아무래도 열심히 일하는 수밖에 없었다. 딱 하루만 희생하자는 생각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 덕분에 첫날을 제외하고는 계획대로 여행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행 모드로 접어든 내 머릿속에 자꾸만 이상한 생각 하나가 맴돌았다. ‘아, 여기서 일하는 거 정말 좋았는데.’
노동으로 가득했던 첫날, 여행 노동의 맛을 알아버린 것이다. 전주의 카페는 집 앞 카페와 크게 다를 바 없었는데도, 유달리 공기가 신선하고 상쾌하게 느껴졌다. ‘카페 공화국’ 대한민국엔 어딜 가나 카페가 있지만, ‘여행지의 카페’는 언제나 날 설레게 할 만큼 충분히 새삼스럽다. 낯선 객지에 나 홀로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기분 좋은 고독함도 찾아왔다. 객지의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인고의 퇴고 과정마저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출장 첫날의 그 카페에서, 나는 평소라면 3시간은 족히 걸렸을 일을 1시간 만에 모두 끝내 버렸다.
창작은 마감이 한다는 말이 있다. 창작의 문은 사람이 열더라도, 닫는 건 마감의 몫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봐도 마감 기한이 남아 있으면, 창작물을 완성해내기가 쉽지 않다. 창작물은 마감의 독촉이라는 자양분을 먹고 쑥쑥 자라난다. 아마도 모든 창작자가 마감을 증오하면서도 사랑할 것이다. ‘나는 지금 여행지에 있다’는 생각은 내게 마법 같은 마감 기한을 부여해주었다. 그것도 ‘최대한 빨리'라는 마감 기한을. 객지에서 나는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수준의 업무 효율성을 체감했다. 집에선 한 글자씩 힘겹게 썼던 글을 막힘없이 술술 써 내려갔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돌아가는 두뇌는 희열로 꽉 찼다.
내가 여행과 노동의 결합에서 예상했던 건 여행의 행복을 억누르는 노동의 고단함이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여행의 행복이 노동의 고단함을 사르르 녹여버렸다. 힘듦은 사라지고, 노동 그 자체의 뿌듯함만 남았다. 여행 노동은 생각보다 낭만적이고 만족스러웠고 좋았다. 다음에 여행 노동의 기회가 생긴다면, 그땐 관광 욕심을 내려놓고 여행 노동 그 자체에 좀 더 집중해보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충청북도 제천으로 출장 일정이 잡혔다. 좋아, 이번엔 제대로 여행 노동을 경험해보자. 전주와 달리 제천에서는 관광을 위한 시간을 낼 수 없을 정도로 바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히려 좋다. 여행과 노동의 조합을 제대로 경험할 기회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도 여행과 노동이 특별한 케미스트리를 보여준다면, 그야말로 놀라운 발견이다. 여행 노동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짐을 싸는 마음가짐부터 달라졌다. 여행지에서 입을 만한 옷 대신 편하게 즐겨 입는 옷들을 챙겼다. 평소 읽던 책과 일기도 챙겼다. 전주 출장 때와는 또 다른 의미로 마음이 설렜다.
제천에서는 취재하고 원고 쓰기를 반복하다가 잠드는 노동의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도 좋았느냐고? 좋았다 뿐이겠는가,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한 달 살기 트렌드를 거부했던 지난날이 무색할 만큼, 난 객지에서의 삶이 너무나 행복했다. 낯선 곳에 조금씩 스며드는 과정이 즐거웠다. 일하는 얼굴엔 생기가 돌았다. 여행지와 한 걸음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은 이번에도 일의 효율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주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바라본 숙소 앞 거리, 낯선 목적지 이름을 놓칠세라 버스 안내 방송에 귀 기울이던 순간, 가장 짧은 경로 대신 기꺼이 조금 더 걷는 경로를 선택하는 마음, 서울과 다른 정겨운 시내의 모습, 짬을 내어 둘러본 시장 풍경, 그 자리에서 우직하게 한세월을 나신 듯한 카페 사장님과 나눈 짧은 대화까지. 작정하고 관광했던 전주보다 특별히 찾아간 곳 없이 일만 했던 제천이 오히려 더 기억에 남았다.
나를 전진하게 하는 건 루틴을 지키는 규칙적인 삶이었지만, 때로는 이처럼 루틴으로부터의 해방도 필요하다.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자유가 이토록 찬란할 줄이야.
이제까진 주어진 여행 노동의 기회만을 즐겨왔다면, 앞으로는 직접 기회를 만들어 보려 한다. 우리나라 곳곳을 거쳐 언젠가 해외에서 여행 노동을 하는 그날까지. 지금은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시대고, 나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직업을 가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