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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여자 May 11. 2024

'서로 마음을 나누어줄 수 있는 사이'

-우리는 친구-



각자 다른 지역에서 살아서 가끔 전화나 메시지 전하는 걸로 안부를 확인하는 친구가 있다. 올해 첫째 아이가 입학을 하고, 둘째가 어린이집을 이용하게 되면서 몇 년 만에 자유의 시간이 주어졌다고 했다. 오전 3시간 정도의 시간인데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모르겠다며,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어린이집도 최대한 늦게 보낼 수 있을 때까지 가정 내에서 케어를 하다 보낸 편으로 사회성도 중요하기 때문에 집단생활도 필요하니 더 빨리 보내는 게 낫지 않겠냐 했지만 그래도 할 수 있을 때까지 가정 양육을 하고 어린이집에 보냈다. 그런 친구를 보면서 이렇게까지 모성애가 강한 친구였나 싶을 정도였다. 항상 아이들을 케어해야 하는 상황으로 전화통화도 쉽진 않았다. 그래서 통화를 하더라도 짧게 안부만 확인하고 끊었는데 웬일로 오전부터 전화가 왔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이라며 말이다. 

     

놀아본 사람이 잘 논다고 잘 놀지 못한 사람은 정작 시간이 주어졌을 때 어떻게 그 시간을 보내야 할지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지금 친구가 그랬다. 오랜만에 주어진 자유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갑자기 공허함과 함께 우울한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함께 모든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하다가 그 빈자리가 생기니 많이 허전한 마음이 들었나 보다.


아직은 이 자유시간이 익숙지 않지만 곧 이 자유시간에 익숙해져 길게 느껴지는 이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순간도 올 거라 생각한다. 이 시간을 집안일 돌보고 하는 것도 좋지만 난 친구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이 시간을 활용하면 좋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면서 직장생활도 그만두고, 친구들도 다들 다른 지역에 있어 마음 둘 수 있는 누군가가 많이 없는 편이라 알고 있다. 그래서 가까이라도 살면 한 번씩 얼굴 보고 할 텐데 거리도 있고, 육아로 인한 생활패턴이 나와 다르기 때문에 서로 연락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때가 많았다. 난 퇴근 이후에 연락하는 게 편한데  그 시간이 친구에게는 가장 바쁜 시간이니 말이다. 그래서 정말 가끔 짧은 통화를 하거나 메시지로 안부를 확인하곤 했다.  


그러고 보니 얼굴을 마주한 지도 정말 몇 년이 된 것 같다. 한 번씩 친구가 사는 지역으로 출장이 있을 경우 잠시 만나 얼굴을 보거나 부모님 댁에 오면 일정 맞춰 보거나 했는데 그조차도 케어해야 하는 아이가 있고 시댁 일정도 맞추고 하다 보니 쉽지 않아 최근 몇 년간은 얼굴을 못 본 것 같다. 얼굴을 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한 번씩 통화하고, 메시지로 주고받아도 충분히 마음이 전해지는 사이인 듯하다. 항상 통화를 할 때마다 이 친구는 특유의 톤으로 이름을 불러주고, 반겨줘서 좋은 것 같다. 


한 번은 연락이 와서 뜬금없이 '부모님은 건강하시지?' 하고 묻는 게 아니겠는가. 평소 서로 일상 이야기를 한 게 다였는데 갑작스럽게 부모님 안부를 물어 혹시나 해서 물었더니 역시나 아버지가 얼마 전에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했다. 왜 연락하지 않았냐 하니 워낙 갑작스럽기도 했고, 정신이 없어서 가족들 위주로 모여 장례를 치렀다고 했다. 건강하셨는데 갑작스럽게 감염성 질환을 진단받고, 며칠 만에 돌아가셔서 더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모님 건강할 때 잘 챙겨드리고, 여행도 많이 가라고 했다. 지나고 나니 부모님이랑 같이 여행을 많이 못 다닌 게 가장 후회가 된다며, 지금이라도 엄마랑 같이 여행도 가고 해야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다고 했다. 최근 아버지도 돌아가시기도 했고, 자주 부모님 댁에 오지도 못해 혼자 지내는 엄마 걱정을 많이 하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친구를 생각하면 마음 한편으로 왠지 짠한 게 있었다. 그러던 친구가 공허하고, 우울한 생각이 든다 하니 그냥 그 말이 흘려보내지지가 않았다.   


친구에겐 여유로운 시간이지만 나에게는 바쁜 오전 업무 처리 중이었기 때문에 짧게 안부만 묻고 전화를 끊었는데 끊고 나니 마음이 쓰여 커피 쿠폰을 보내며 '커피 한잔 하며, 주어진 자유시간을 오로지 스스로를 위해서 보냈으면 한다'는 메시지를 함께 보냈다. 정말 별 거 아니지만 친구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비록 몇 년간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언제든지 연락을 해도 마치 어제 연락을 한 듯 편한 친구가 있다는 게 참 좋은 것 같다. 자주 보지 못해도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는가. 친구에게도 내 마음을 오로지 나누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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