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출근해서 사무실이다. 활동이나 행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관내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관리를 위해 출근을 해서 조금은 여유로운 날이다. 다행히 오늘은 크게 신경 쓸 일이 없고 해서 조금 여유롭게 책도 보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평소에는 직원들 뿐 아니라 많은 지역주민들이 이용하는 곳이라 항상 뭔가 소란함이 함께하다가 오늘은 아주 조용하다. 에어컨은 잠시 끄고, 창문을 열어뒀더니 밖에 빗소리가 들린다. 빗소리와 어울리는 김동률 님의 발라드를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빗소리와 김동률 님의 목소리가 아주 좋다. 강릉에도 비가 내린다니 너무 다행이다.
요즘에는 2주 안에 2~3권씩 책을 꾸준히 읽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2주에 한 번씩은 꼭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고, 책을 반납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이번에 고른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 님의 소설책 2권과 이기주 님의 <그리다가, 뭉클>이라는 책이었다. <그리다가, 뭉클>은 소설책에 밀려 조금 급하게 읽긴 했지만 마음에 콕콕 박히는 좋은 문구들이 참 많았다.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읽었다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어 나중에 다시 한번 빌려 읽어볼 생각이다. 같은 문구도 내가 어떤 마음이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고, 나중에 다시 또 보면 또 다르게 다가오는 법인데 이 책은 나중에 다시 한번 읽어보면서 곱씹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러 좋은 문구들이 있었지만 오늘은 이 페이지가 제일 와닿았던 것 같다.
그림은 새살을 돋게 하는 '후시딘' 같다. 깊게 파여 쓰리고 아팠던 마음의 상처 위에 그림 후시딘을 바르면 깊게 스며들어 말랑말랑한 새살이 돋는다. 나이를 먹을수록 상처받을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어쩌다 생긴 상처쯤이야 살아온 시간만큼 경험도 많을 테니 금세 나을 줄 알았다. 웬걸, 상처받을 일이 더 많아졌는데 바를 약은 별로 없더라. 그래서 후시딘 같은 그림 그리기는 나이 들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알 만한 나이가 됐지만 아직도 어설프고 서툴 때가 많다. 칭찬이나 배려 같은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서부터 식당을 예약해야 하는 자질구레한 일까지 내가 무엇을 잘 못하고 사는지 오히려 그림을 그리면서 알아채는 일이 많아졌다. 선을 긋다가, 소실점을 공부하다가, 구도를 잡거나 어려운 수채화 채색을 하다가 문득 그림이 인생을 가르쳐주었다. 그림 그리다가 몇 번을 울컥했으니까.
-이기주 '그리다가, 뭉클' 중에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상처에 무뎌지고, 상처받을 일이 더 없을 거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과거의 경험, 상처받았던 일들 때문에 더 상처받기가 겁나고, 상처받을 것 같으면 자기 방어기제가 발동하는 듯하다.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겁이 많아진다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그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빠져나올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이전보다 더 잘 알고는 있다. 하지만 결코 그 깊이가 낮다거나 아무는 시간이 짧다는 것은 아니다. 헤처 나올 수 있는 방법을 더 잘 알고 있을 뿐이지.
이기주 님에게 새살을 돋게 하는 후시딘 같은 존재는 그림인 것 같다. 나에게 지금 후시딘 같은 존재는 무엇일까. 요즘은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더 책으로 관심을 돌리는 듯하다. 책을 보는 동안은 거기에 집중하고, 생각을 멈출 수 있어서 그런지 책을 정말 요즘 열심히 읽게 되는 것 같다. 정말 때로는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정답일 때도 있다.
각자에게 후시딘 같은 존재는 있을까? 아니 있었으면 좋겠다. 누구에게나 그런 후시딘 같은 존재가 있어서 마음의 상처 위에 새살을 돋게 해 주면 좋겠다. 그 존재가 무엇이든 말이다. 지금은 나에게 그런 존재가 책이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다른 것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후시딘 같은 존재가 사라지진 않도록 그 후시딘 같은 존재를 앞으로도 계속 찾을 것이다. 내가 건강하게 이 일상들을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모두에게 후시딘 같은 존재가 있어서 빠르게 상처들을 아물게 해 주면 좋겠다란 생각이 드는 9월 어느 토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