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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릐 Aug 20. 2022

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14일 차, 20200331

이것도 일상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가득 내려놓은 셔터인데 그 사이로 봄 햇살이 삐져 들어온다. 

흡사 새 팬티 고무줄에 눌려 튀어나오는 뱃살처럼.

겨울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광경에 봄의 생명력을 다시 한번 느끼면서

그렇게 어김없이 재택근무 4주 차의 첫 날을 시작한다.


일상이 주어진다는 사실은 조금은 감사할 부분이 있다.

녹차를 내리고, 1미터 남짓 되는 출근길을 지나 어렵게 사무실 의자에 앉고 회의를 시작한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단축근무 덕분에 여러 가지 감정이 뒤엉켜있다. 

방학을 맞이하는 듯하여 기쁘지만, 경제적 타격을 생각하면 마냥 기쁘지는 않다.

어찌 되었든 지나가는 시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계획을 세우는 계획을 머릿속으로 계획하는 동안 이미 벌써 반나절이 지나간다. 


흘러가는 시간 안에 유유자적 떠내려온 나는 급류이든 완류이든 언제나 중 2병에 걸린 환자처럼

인생의 심오함 혹은 철학적 고찰에 관심을 기울이고 인생의 극적 감정을 애써 꾹꾹 담아 견디는 척 지내왔는데

그런 모습에 역겨움이 가득해 태연한 생각을 하는 것조차 스스로에 대한 기만이란 생각까지 들면서 지내온 지금까지의 삶에

기필코 지금의 순간은 인생의 제일 힘든 순간이 아님에도 특별한 생각으로 이를 지나가고 있는 것은 오랜 병이 다시 도진 까닭이다.


단축근무가 시작되어도 다시 일상이 주어질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날이 갈수록 커진다. 

허나 지금의 시간을 온전히 느끼고 활용하기에는 감옥과 같은 이러한 일상이 나를 훈련시키는데 더 도움되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갖는다.

어쩌면 일상이라는 마약을 지속적으로 투여받고 희망이라는 환각을 경험하는 것은 아닌지. 


먹고 마시고 입고 벗고 싸고 자고 일어나서. 

다시 먹고 마시고 입고 벗고 싸고 자고.

회사에 출근할 당시에는 한국이든 독일이든 변기에 앉아 보내는 시간이 잦았다. 

똥 싸는 시간에도 돈을 벌기 위해서. 비록 재택근무를 하고 있지만, 어김없이 근무 관련 메일을 읽으면 얼마 안 되어

화장실로 향한다. 

이것도 일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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