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 없는 묽은 하수구

100일간의 코로나 일기 41일 차, 20200427

by 흐릐

어김없이 아침 8시 50분에 일어나 오줌을 싸고, 눈곱을 떼고, 방귀도 한 번 시원하게 뀌고 물을 한 잔 마신 후 9시까지 출근을 한다.

지난 금요일에 인사 담당 부서에서 이런 이메일이 왔다.


“5월 11일부터 사무실의 soft opening을 시작하겠습니다.”


소프트 오프닝. 부드러운 개방? 천천히 문을 연다는 말인 것인가. 뭐 대략 맥락은 이해가 가지만 와닿지 않는 표현이다.

더군다나 나처럼 하루에 한 시간 반 일하는 사람이 전체 직원의 대부분일 텐데 한 시간을 일하기 위해 왕복 두 시간의 통근을 해야 하는 것인가.

또, 5월 11일이면 이제 2주 남짓 남은 시간인데, 생각보다 얼마 남지 않았다. 정말 집에만 틀어 박혀 지낸 시간이 두 달이 되어 가는데. 허무하게 지나간 시간에 괜스레 상황이 원통하다.

밖의 풍경은 아무래도 긴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보이지 절대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세계적인 전염병 유행으로 긴장되어 있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여행을 다녀왔을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을 사람들, 평소 못 했을 자기계발이나 취미를 즐겼을 사람들 등,

현재 주어진 시간을 불만 이외의 것으로 긍정적으로 보낸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수없이 떠오른다.


지난 두 달간 내가 만든 변화를 찾아보면,

먼저는 41회째 매일 이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집이 커졌다는 것.

사실 이 글을 처음 쓰고 대중이 접근 가능한 공간에 올린다는 것은 굉장히 두렵고 긴장된 일이었다.

제대로 글 쓰기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그렇다고 남들보다 월등하게 책을 많이 읽거나 글을 많이 쓴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써 온 글은 남에게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닌, 훗 날 나의 과거 사고가 궁금할 때를 상상하며 기록차 남긴 글들이 전부이다.

시선, 평가, 비판, 관심, 동정, 측은, 질투, 멸시 등을 무릅쓰고 올리기 시작한 보잘것없는 나의 내용 없는 글들.


40일이 넘도록 글을 써서 올리면서 내 생각보다 굉장히 미미한 사람들의 관심은 나의 자질과 가능성을 좀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항상 자만하고 겸손하지 아니하지만 겸손한 마음을 갖은 척하면서 속으로는 온갖 거대한 기대를 갖고 지내는데

현실은 재능 및 노력이 부족한 한 낱 망상에 빠져 사는, 청년이란 말이 어색한 30대.


내 글로 현실을 직시한다. 부족한 재능을 깨닫고, 부족한 노력을 깨닫는다. 방 안에서 홀로 괴물같이 변해가는 나의 모습을 기록하는 내용 없는 나의 글은 혐오감만 불러일으킬만한 동정 없는 묽은 하수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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