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적인 삶이라 적어놓고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것에 대하여
늘 같은 플레이리스트의 음악을 듣는다. 매일 커피머신을 세팅하고 내 자리에 앉아 손님을 기다린다. 그러다 보면 나는 능동적인 사람인가 수동적인 사람이었나 고민하는 지경에 이른다. 물론 상황에 따라 스스로 하는 것과 받는 것은 달라지겠지만 서로의 비율이 중요하다. 능동적인 인간을 꿈 꾸지만 한 곳에 머물러야 하는 수동적인 생활을 한다.
그 속에서 작은 변주를 준다. 예를 들면 지금 글을 쓸 수 있게끔 주방에 나만의 테이블을 놓은 것이다. 이게 뭐라고 기다리는 삶의 질이 달라졌다. 더 활발하게 새 메뉴를 구상하고 만들어보고 좌절하고 극복한다. 이 정도면 적극적인 삶인가.
가을 날씨가 사라지는 동안 왼쪽 발목을 삐었고 피곤한 눈에 상처가 났다. 그것도 왼쪽 눈이다. 한 발과 한 눈으로 생활하면서 과연 지금 나를 위해 살고 있나 생각해 봤다. 오늘에 오기까지 모든 선택과 결정은 내가 했고 반성과 통찰도 나의 몫이다. 결국 환경은 내가 바꾼 것인데 주어진 고통을 외부 자극 탓이라고 여긴다. 물론 자기 객관화를 심하게 잘하는 덕분에 내 생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잘 눈치채고 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도 잘 안다. 운 없다고 자책할 상황이 아니지 않으냐고 또 다그친다. “어떻게 하지?”, “할 수 있어”라는 혼잣말들을 오가며 집중력을 잃은 나는 자꾸만 회복하려 애쓴다. 거의 매일 걷고 쓰러지듯 잠에 들고 다음날 늦잠을 겨우 피한다.
기억은 미화되기에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지만 아쉬운 것이 맴돈다. 열심히 저축을 하고 사람들 더 실컷 만나고 나만의 색깔을 빨리 찾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후회한다. 신중하지 못했던 지난날의 결과를 맞이하는게 당연한 것인데 약간은 인정하고 싶지 않나 보다.
나만 아는 추상적인 글을 남긴다. 활기 가득한 이야기를 남기려 했는데 지금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해가 짧아져서 그런 거라고 다시 합리화를 한다.
스스로 할 수 있는 테두리 안에서 취향을 찾고 안부를 적고 마음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