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 4 - 서투름
그날은 시재가 안 맞았습니다.
마감을 하고 보니 정확히 백만 원이 비었습니다.
월말이라 바쁘다고 정신 못 차리고 일했나 봅니다.
돈이 어디로 갔는지 전표를 뒤지고, 일했던 내역을 다시 보고
내 자리를 비추는 CCTV까지 확인해도 도무지 행방을 알 수 없었습니다.
하.
취직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돈을 메꿔 넣게 되는 건가.
눈물을 꾹 참고 하나씩 찬찬히 생각해보고 있는데
누군가 쓰레기통은 뒤져봤냐고 물었습니다.
에이. 그래도 설마 쓰레기통에...... 서 백만 원이 나왔습니다!!!
다시 CCTV 판독 결과.
네. 제 손으로 서랍에 넣어야 되는 돈을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더라고요. (with 번호표)
신입 때의 아찔한 경험 덕에 정신 똑띠 챙겨서 웬만하면 시재 펑크가 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무수히 많은 서투름이 쌓여 '이만하면 되었다' 싶을 때 즈음,
새로운 난관이 다가왔습니다.
결혼과 함께 인생 2라운드의 문이 열리며
'장남의 아내'라는 완장을 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밥솥의 취사 버튼 한번 눌러본 적 없이 시집을 왔습니다.
사과는 과도로 깎아본 적 없고 (감자칼이라는 훌륭한 도구가 있지요!)
요리라고는 라면 끓이기 말고는 할 줄 몰랐습니다. (이것도 요리라고 쳐주나요?)
그런 내가 맏며느리로 일 년에 제사를 다섯 번씩 지내게 되었습니다.
물론 고작 시어머니를 서브하는 정도였지만
보조라고 하기조차 민망한 상황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쌀 씻다가 다 떠내려가고, 야채는 삐뚤빼뚤, 돼지고기 수육은 덜 익고,
"에휴, 어설퍼가지고는. 이리 나온나."
주방의 쩌리 신세가 서글펐지만 어쩌겠어요. 못하는데.(ㅠ_ㅠ)
메인 셰프였던 백수저 어머님이 편찮으신 후로는
어설픈 흑수저 셰프가 주방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죠.
십삼 년쯤 하다 보니 이게 착착 되더라고요!
'감칠맛은 맛소금, 피날레는 깨소금'을 모토로
무한 제사상 차리기에서 생존해 나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길에서 낯설지 않은 서투름을 만났습니다.
붕어빵 노점 오픈 첫날, 첫 개시에 당첨되었거든요.
슈붕 3개, 팥붕 3개 주문했는데 슈붕은 미처 재료 준비도 안 되어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팥붕으로 다 주세요."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당황한 사장님의 표정을 읽었습니다.
시간 조절에 실패하여 여기저기 새까만 붕어빵.
문득 나의 서투름이 생각났습니다.
"괜찮아요. 그냥 주세요."
"죄송합니다. 첫날이라...... 서비스로 하나 더 넣어드릴게요."
위, 아래 지느러미 다 떼고 먹어야 하는,
팥이 넘치고 이븐하게 익지 않은 붕어빵도 나름 맛이 있었습니다.
그 후로 며칠간 사장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 오픈 안 하시지 궁금하던 차에
다시 만난 사장님네 붕어빵은 완벽한 굽기와 적당한 앙금으로 정진해 있었습니다.
서투름을 통과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순간을 만나 괜히 기뻤습니다.
음. 이븐하게 익었군요.
탄맛 붕어빵 셰프님, 생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