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살 수 있는 별은 지구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요즘 더 절실히 와닿는다. 공기 좋은 곳을 찾아 도시를 떠날 수는 있어도 지구를 떠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를 다룬 책, <두 번째 지구는 없다>를 읽고 그런 위기감은 더 강해졌다. 환경을 지키는 일은 단지 조금 더 깨끗한 자연에서 살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책의 저자 타일러 라쉬는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책을 읽는 동안 그의 절박한 마음이 내게 전해진 것일까. 책을 읽고 난 후 나도 그와 같은 꿈을 갖게 되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앞으로도 이 같은 바이러스에 노출된 채 살 가능성이 많다는 위협만으로도 내가 변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나야 이미 40년 가까이 살았으니 상관없지만, 내 아이가 앞으로 마스크도 못 벗고 생활할 수 있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 내 아이를 위한 제로 웨이스터가 되기로 결심했다.
제로 웨이스트는 환경 보호를 위해 쓰레기를 줄이는 다양한 활동을 말한다. 나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깨닫고 난 후 제일 먼저 환경 친화적인 기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종이 빨대를 만든 스타벅스나 환경오염이 가장 적은 직물 가공 방법을 채택한 파타고니아 등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기업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그런 기업들을 선택하는 일이 늘었다. 그런 행동이 내가 쓰레기를 줄이고 자원을 아끼는 것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필수품인 장바구니와 텀블러도 빼놓을 수 없다. 아기와 유모차 산책을 나갈 때면 잊지 않고 장바구니와 텀블러를 챙겼다. 마트에서는 그나마 종량제 봉투를 받을 수 있지만, 그 외 식당이나 정육점, 빵집 등을 이용할 때는 장바구니가 없으면 일회성 비닐봉지가 금세 쌓이고 만다. 비닐봉지 한 장이 분해되는 데 최소 500년이 걸린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매번 덥석 받아오는 비닐봉지도 스트레스다. 장바구니가 있으면 그런 불편한 마음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1년 반 전에 남편(그때는 남자친구)이 중고로 사줬던 스타벅스 텀블러.
텀블러도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전부터 텀블러를 쓰긴 했지만 사무실에서 종이컵 대신 사용한 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카페에 갈 때 일부러 챙기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카페에서 텀블러를 내미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다. 특히 당시에는 코로나19 가 터진 해라 모두 예민할 때였다. 카페에서 텀블러를 받아주는지 미리 확인해야 했다. 다행히 자주 가던 카페에서 텀블러를 가져와도 된다고 해서 다음날 아기와 유모차 산책을 나갈 때 텀블러를 챙겼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 대신 내 텀블러에 커피가 담겨 나오는 걸 보는 순간 느낀 뿌듯함이란! 직원에게 커피를 받으며, 하루에 텀블러를 가져오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물으니 10명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텀블러 사용이 항상 환경보호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몇 번 쓰지도 않고 새것을 자주 산다면 의미가 없다. 캐나다 환경보호 단체 등에 의하면 1000번 이상 텀블러를 사용해야 환경보호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하루에 한 번 사용한다고 치면 적어도 3년 이상은 사용해야 하는 셈이다.
예전에 어느 교육을 들으러 갔을 때, 참가자 모두에게 텀블러를 나눠준 적이 있었다. 환경보호라는 명목으로 그랬을 테지만 그 교육이 끝난 후에 많은 텀블러가 그곳에 고스란히 버려진 것을 보면서, 차라리 종이컵을 몇 번 쓰는 게 낫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다(그 텀블러는 나도 결국 버렸다). 텀블러는 그렇게 대량으로 나눠주는 것보다는 오래 쓸 것으로 자신이 직접 고르는 게 나은 것 같다. 지속적으로 사용하지 못할 텀블러의 남용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다음에 바꾼 습관은 샤워할 때 바디워시 대신 비누 사용하기. 비누를 쓰면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비누 자체도 바디워시보다 물에서 분해가 잘 된다.
환경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나의 노력은 소소하다. 제로 웨이스트를 완벽하게 실천할 자신도 없다. 부끄럽게도 아기를 키우면서 기저귀나 물티슈 쓰레기가 많이 나오지만 편하기 때문에 그 습관을 버릴 엄두가 나지 않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궁리를 시작한 건 의미 있는 변화라고 믿는다.
무분별하게 버리는쓰레기로 환경을 오염시키는 일은, 지나친 폭식으로 몸을 망가뜨리는 일과 비슷한 것 같다. 당장의 편의나 미감을 위해 더 중요한 환경과 건강을 해치고 있으니 그만큼 정신이 흐리다는방증이다. 환경을 생각하며 쓰레기를 줄이기 시작하자 숲길을 걷는 것처럼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내 아이가 환경 파괴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 아름다운 지구를 누리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깨끗한 자연을 만끽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환경을 생각하는 이유는 솔직히 그것 하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