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살바람 May 03. 2021

밀당의 고수

생후 16개월 때의 기록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너)


호야가 "엄마, 아빠"를 말할 수 있게 된 다음부터 걸핏하면 호야에게 하는 질문이 있다. 바로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다.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정말로 궁금하기 때문이다. 호야가 엄마, 아빠 중에 누굴 더 좋아하는지! 유치하지만, 호야가 제일 좋아하는 게 나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짓궂게도 호야는 아직까지 "엄마"라고 대답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을 만큼 한 번도 없었다.


물론 호야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을 알아들었을 리는 없다. "엄마가 싫어, 아빠가 싫어?"라고 물어도 "아빠"라고 대답하는 걸 보면. 하지만 항상 "아빠"소리만 나오는 입이 야속한 건 사실이다. 시험 삼아 "엄마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고 해도 질문에도 없는 "아빠"를 찾는다. 나한테 뽀뽀하면서 애정공세를 할 때 혹시나 싶어서 재빨리 물어도 단칼에 "아빠!"라고 대답해서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어쩔 땐 그만 좀 물어보라는 듯이 "아빠~!!" 하면서 소리친다. 그리고는 나를 보면서 누군가를 놀릴 때 지을 법한 웃음을 짓는다. 진짜 놀림당한 기분이다.


기가 막히는 건, 말로는 "아빠, 아빠" 하면서 몸은 나한테 꼭 붙어 있는다는 거다. 장난감을 들고 내 주위를 서성이거나 내 다리 위에 앉아서 노는 등, 정작 아빠한테는 잘 가지 않고 주로 내 옆에 있는다. 핸드폰을 볼 때도 아빠가 핸드폰을 볼 때는 상관하지 않으면서 내가 핸드폰을 보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심지어 호야 사진을 찍을 때도 훽 낚아채거나 으앙 울어버리는 통에 사진도 못 찍을 때가 많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자기만 보란다. 구속남도 이런 구속남이 없다.


나한테만 붙어있다 보니 남편이 부러울 때도 있다. 아기를 재우는 것과 달래는 것도 내 몫이기 때문이다. 잘 때도 나를 찾고, 울 때도 내가 안아야 울음을 그치니, 남편에게 맡겼다가도 5초 만에 내게 돌아오고는 한다. 그럴 때면 호야가 정말 아빠를 더 좋아하는 건가, 그래서 아빠를 편하게 해주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러니 남편도 나도 호야가 자기를 제일 좋아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호야가 내게 딱 붙어 "아빠, 아빠" 할 때마다 남편과 나는 동상이몽에 헤맨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이런 아슬아슬한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호야가 가르쳐주지도 않은 "아부지"를 말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어느 날 갑자기 "압지~ 아부지~" 하는데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아부지라고 하는 거지? 어린이집에서 가르쳐 준 건가? 아무래도 호야가 다칠 때마다 내가 "아푸지~" 하고 물어봤던 걸 호야가 "아부지~" 하고 따라 하는 것 같았다. 호야는 아직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서 '양말'을 '엄마'라고 하거나 '아파'를 '아빠'라고 따라 하곤 하기 때문이다. 아부지라고 할 때마다 우리가 반응을 보이니까 아부지를 더 자주 말하게 된 것 같다.


아무튼 "아빠, 아빠" 노래를 부르다가 "아부지, 아부지"까지 넘어갔으니 이제는 점점 내가 지는 기분이다. 엄마 소리를 언제 들어봤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엄마를 자주 불러주진 않지만 그래도 내 옆에 붙어 있으니 나를 더 좋아하는 게 아닐까. 애가 탄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를 알아듣는 날이 영영 오지 않았으면도 싶다. 그때도 네 입에서 아빠라는 대답이 나온다면 난 꼼짝없이 실연당한 기분이 들 테니까! 차라리 이 희망고문의 시기가 더 길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네가 엄마라고 대답해주고 엄니라고도 해줄 것 같아서. 이 삼각관계의 승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내가 부엌에 있으면 부엌으로 와서 노는 엄마 껌딱지




매거진의 이전글 <섬집 아기> 슬프지 않게 부르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