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살바람 Aug 26. 2021

우중 러닝


주 3회 달리기를 시작한 지 12주가 됐다(시간 빠르다!).


"여기까지 함께 하셨다면 여러분에게는 '달리기 DNA'가 있는 것입니다."


'런데이' 어플의 트레이너가 가끔 말하는 것처럼 나에게 정말 '달리기 DNA'라도 있는 것인지, 달리는 시간이 좋고 기다려진다. 주 3회로 정한 횟수도 적당한 것 같다. 하루는 달리고, 다음날은 쉰다.


무엇이 좋냐고 하면, 일단 짧은 시간 동안 땀을 흘리며 운동할 수 있어 좋다. 하루에 보통 30~40분을 달리는데, 집으로 돌아올 때쯤이면 땀이 비 오듯 한다. 다른 때는 몰라도, 그 30분 동안은 삶에 충실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건 최근에 느낀 것인데, 달리는 동안에는 힘들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서 좋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힘들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 생각도 안 든다. 집을 나올 때는 '남편이랑 호야 둘이 집에서 잘 지낼까' 하는 걱정이 들다가도, 달리기 시작하면 그런 걱정도 금세 사라져 버리곤 한다. 불필요한 음식을 줄여서 살을 빼듯이, 불필요한 생각을 줄여서 머릿속 지방을 빼는 기분이랄까.




이번 주는 내내 흐리거나 비가 오고 있다. 비만 내리지 않는다면 달리기엔 참 좋은 날씨다. 구름이 거대한 그늘막이 되어, 여름 끄트머리의 후덥지근함은 사라지고 시원한 바람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낮에는 창밖을 보면서 달리러 나갈지 말지 고민을 했다. 오전 내내 부슬비가 내리다가 막 그친 참이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다시 쏟아질 것 같았지만 장대비는 아닐 것 같았다.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몇 분 달리지 않아 비가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온 게 아까워서 조금 더 달려보기로 했다. 내 달리기 코스인 집 앞 호수공원에는 확실히 인적이 눈에 띄게 줄어 있었지만, 몇몇 사람이 우산을 쓰고 걷고 있었고, 나처럼 비를 맞으며 뛰는 사람도 세네 명 마주쳤다. 


곧 천천히 움직이는 자동차 와이퍼로는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비가 쏟아졌다. 눈 안으로 빗물이 들어오려고 해 눈을 가늘게 뜨고 뛰었다. 비를 맞으며 뛰고 있으니, 초보 러너가 아니라 프로 러너가 된 기분이 들었다. 운동을 미루지 않았다는 것에 스스로 기특하기도 했다. 


얼마 만에 비를 맞아본 것인지 모르겠다. 20대 초반에 우산을 버스에 두고 내려서, 또는 청승을 떠느라, 비를 맞으며 걸었던 이후로는 처음인 것 같다. 신발이 젖을 정도만 아니라면, 가끔은 이렇게 비를 맞으며 뛰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절반 정도 달린 후 몸을 돌려 집 방향으로 뛰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그쳤다. 그 후의 달리기는 평상시랑 똑같았다. 경보랑 크게 다르지 않은 속도로 천천히 뛰어서 집에 돌아왔다. 돌아갈 집이 있다면, 비를 맞는 건 생각보다 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달리기의 즐거움 중 하나. 강아지풀과 하이파이브 하기^^



매거진의 이전글 8주 달리기 도전이 내게 남긴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