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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 Nov 23. 2021

추워서 달리기 싫은 날



퇴근 후 아기를 본가에서 집으로 데려오면 7시쯤 된다. 등원과 출근으로 아침에 집을 나갔던 가족이 다시 모이는 시간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편과 내가 후다닥 저녁을 먹는 사이, 본가에서 밥을 먹고 온 호야는 옆에 앉아 바나나와 포도를 먹었다. 그리곤 얼마 안 있어 침대에 눕더니, 거짓말처럼 스르륵 잠이 들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저녁 8시가 되기도 전에 잠이 들다니! “

남편과 나는 눈이 동그래져서 조용히 방을 나왔다. 보통 엄마 아빠의 체력이 방전될 때까지 놀다가 10시 반은 돼야 잠이 들었기 때문에, 8시 전 취침은 적어도 마지막 원더윅스 이후로 몇 달 만에 있는 대사건이다. 3일 동안 고열에 시달리다가 열이 내린 이후로, 3일째 부쩍 수면시간이 늘긴 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럴까 싶어 안타깝기도 하다.


어쨌든 아기는 일찌감치 회복을 위한 취침에 들어갔고, 나에게는 뜻밖의 자유시간이 생겼다. 다른 때 같으면 무조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달리기를 하러 나갔을 텐데, 오늘은 추운 날씨가 발목을 잡았다. 이날은 무려 얼음이 얼기 시작하고 손돌바람이 분다는 소설(小雪)이었다. 나는 더위보다 추위를 훨씬 많이 탄다. 비록 영상이긴 해도 0도에 가까운 날씨에 밖에 나가 뜀박질을 한다는 생각만으로 닭살이 돋았다. 오늘따라 집은 왜 이렇게 따뜻하고 안락해 보이는지. 게다가 오늘은 월래 피곤한 월요일이라고…

‘추운데 달리기는 무슨. 겨울엔 하지 말까.’

올해 6월에 달리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달리기를 이렇게 오래 할 줄은 몰랐다. 워낙 의지박약이니, 몇 번 뛰다 말겠지 했다. 그런데 어느새 두 계절이 지나 겨울이 왔다. 준비 없이 맞이한 겨울 앞에서 마음이 자꾸 약해졌다. 겨울은 추우니까 달리기를 쉬어야겠다는 생각은, 무척이나 합리적인 판단처럼 보였다.


그렇게 남편이 누워있는 거실 아기매트 위에 나도 벌렁 누웠다. 그런데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여기서 멈추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있는 시간 없는 시간 꾸역꾸역 긁어모아 달리고, 비 맞으며 달렸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지금 하는 운동이라고는 이것밖에 없는데, 이것마저 안 하면 내가 너무 볼품 없어지지 않을까. 게다가 오늘은 직장에서 있었던 실수 때문에 스스로가 싫어지는 날이라, 운동까지 빼먹으면 더 땅굴을 파고 들어갈 것 같았다. 그렇게 나를 더 싫어하고 싶지 않은 발버둥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러닝 재킷 안에 티 두 장을 겹쳐 입고, 기모 레깅스를 꺼내 입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집 밖에 나서자마자 찬 기운이 옷 속으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몸이 떨려서 워밍업이고 뭐고 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러닝 재킷에 달린 모자를 쓰니 추위가 한결 가셨다. 하지만 추운 것도 처음뿐이고, 10분쯤 달리니 땀이 나면서 더워졌다. 그때부터는 찬 공기가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졌다. 호수공원을 달리다가 러닝 어플에서 15분이 지났다는 안내 음성이 들리자마자 바로 몸을 돌려 집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30분 달리기를 마친 뒤에 곧바로 집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다. 땀이 식기 전에 올라가지 않으면 끔찍한 추위가 몰려올 테니까.


악조건을 뚫고 달린 날은 뿌듯함이 배가 된다. 귀찮음을 물리치고 나를 위한 일을 해냈으니 스스로 기특하다. 부지런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이런 시간이 모이다 보면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나저나 이제 어떡하나. 의지가 대단한 사람인 듯 이렇게 글을 한 바닥 썼지만 역시 겨울철 달리기는 자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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