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좋은 2월의 마지막 일요일. 잘 놀고 들어왔는데 호야가 낮잠을 자지 않았다. 낮잠 시간에 해야 할 일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데 호야는 평일 동안 엄마 아빠랑 함께 못한 시간을 메우려는 듯 눈을 말똥말똥 뜨고 거실을 휘젓고 다녔다. (낮잠은커녕 밤 10시가 지나서야 호야의 잠든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호야야~ 너 안 자?”
분명히 방금 전까지 차에서 졸린 눈을 하고 있었는데… ‘낮잠 재우기 막판 굳히기’로 집에 들어오기 전에 놀이터에서 실컷 뛰어놀기까지 했는데… 왜… 왜 안 자는 거야!
“아 몰라, 나 뛰고 온다.”
나는 벌떡 일어나 호야에게 말하는 척 남편에게 간접 선포하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오후 3시 반이었다. 침대 한쪽에 불쌍하게 누워있던 남편이 비틀거리며 거실로 나왔다. 육아맘과 육아대디가 된 이후 전과 달라진 점 중 하나는 주말이 더 이상 휴일이 아니라는 거였다.
겨우내 달리기 할 때 겹겹이 입던 반팔과 긴팔, 러닝 재킷 중 오늘은 긴팔 옷을 입지 않았다. 길에는 모처럼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아 있었다. 개를 산책시키러 나온 사람, 유모차를 끌고 나온 사람, 노부부 등 저번 주까지만 해도 텅텅 비어 있던 호수공원 산책길은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그들을 피해 이리저리 달리는 일이 귀찮기보다 반가웠다.
겨울은 여름보다 훨씬 달리기 힘든 계절이었다. 여름에는 그나마 새벽이나 저녁 시간을 이용해서 더위를 피할 수 있었지만, 겨울은 아무리 해가 중천에 떠있어도 추웠다. 더위보다 추위를 잘 타는 체질도 문제였다. 뛰러 나가려면 큰 결심이 필요했다. 12월에 간신히 지키던 주 3회 달리기 루틴은 1월에 들어서면서 번번이 무너졌다. 일주일에 한두 번 달리는 날이 많았고, 그마저도 3K가 최선이었다. 달리기 실력 대신 체중이 늘었다. 그래도 달리기의 끈을 놓지 않는 데 의미를 뒀다.
15분 정도 달리자 한겨울에는 느낄 수 없던 후끈한 열기가 올라왔다. 마스크도 금세 땀에 젖었다. 몸에 안착했던 군더더기 살들이 새삼 놀라 아우성을 쳤다.
꽁꽁 얼었던 풍경은 서서히 부드러움을 되찾고, 경직됐던 사람들 표정도 얼마간 누그러졌다.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 다시 달릴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