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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Mar 24. 2021

낙관주의자

한뼘소설

 “힘들지 않냐고요? 물론 힘들죠. 어디 힘들지 않은 일이 있나요? 그래도 이놈의 코로나 때문에 다들 힘들다, 죽겠다 하는데 우리는 그런 건 없으니까요. 언택트 시대잖아요. 덕분에 일감이 두 배로 늘어났어요. 괜한 욕심 안 부리고 자기 체력 받쳐주는 만큼만 일해도 우리 두 식구 먹고는 살아요. 돈 많이 벌고 싶지 않냐고요? 벌고 싶지요. 돈 싫어하는 사람 있나요? 욕심부리면 끝이 없잖아요. 얼굴은 모르지만 동료들이 벌써 몇이나 과로사로 떠났잖아요. 그깟 돈 몇 푼이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가요.”


 “요즘에는 회사도 달라지려고 노력하는 게 보여요. 분류업무에 별도 인원을 투입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예전이요? 말도 꺼내지  마세요. 아침에 출근해서 오전 내내 분류업무에 매달리면 점심 먹을 시간도 없어요. 배송하면서 빵이랑 우유로 대충 때웠죠. 거르는 날도 많았고요. 이제 짜장면 한 그릇 먹을 시간은 생겼으니 그게 어디예요. 앞으로 더 좋아지겠지요. 참, 글쎄 우리 택배 기사들도 고용보험도 적용받는데요. 그게 언제부터였더라. 아무튼, 힘들어도 희망이 있으니까 버틸만해요." 


 “사람들 인식도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택배 기사라면 힘든 일 하는 사람이라고 무시했는데 지금 그런 사람 별로 없어요. 어떤 집은 문 앞에 고맙다는 편지도 써주고 생수나 음료수도 마시라고 놓아두는 걸요. 어떤 아파트는 아예 택배 기사 쉼터도 따로 마련했어요. 주차장 한편 좁은 공간이면 어때요? 사람 마음이 중요하죠. 이제는 사람들한테 인정받는 일을 하는구나, 이런 생각도 들어요. 고급 아파트 담당하는 동료들은 아직도 힘들어하지만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 나아지겠죠.”


 “기자님, 인터뷰할 거 더 남았어요? 배송할 물량이 많이 밀렸네. 뭐 꿈같은 거 있냐고요? 없어요. 아니 있다. 총알 배송, 로켓 배송, 새벽 배송 이런 건 좀 없어지면 좋겠어요. 급하게 필요한 건 동네 마트에서 사면 되잖아요. 마스크 쓰고. 자영업자들 힘들다고 하는데 골목상권도 좀 살아야죠. 내가 힘들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세상이 너무 빨라지잖아요. 과속은 위험해요. 한 번씩 브레이크를 밟아줘야 하거든요. 이제 됐죠? 내 얼굴 잘 생기게 나와야 해요. 수고했어요, 기자님.”


 택배 기사 K씨는 영상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마도 마지막 웃음이었으리라. 그는 인터뷰 다음 날 새벽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와의 인터뷰는 ‘택배 기사의 고된 하루’라는 타이틀로 추석 다음날 방송 예정이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방송은 나가지 못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K씨의 죽음은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그래도 기분이 씁쓸했다. 그의 죽음을 과로사로 인정하는데 5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오늘 아침 주문한 물건이 저녁에 도착하는 초스피드 시대, 그 일을 온몸이 부서지도록 해낸 사람의 죽음을 규정하는데 5개월이나 걸렸다. K씨가 말한 브레이크는 정작 그의 죽음을 해명하는 데에만 작동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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