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이라는 이름의 무지개

<세 번 읽는 그림책> 파란 아이 이안 (이소영 글·그림)

by 조이홍

우리 집에 차고 넘치도록 많은 레고. 아이들이 작은 브릭 조각을 삼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진 후, 아내와 나는 아이들에게 참 많은 레고를 사주었다. 지금도 아이들 자는 방 한 면이 레고로 가득하다. 매번 덴마크 회사인지, 스웨덴 회사인지 헷갈리는 장난감 회사 레고에서 성 소수자 커뮤니티를 상징하는 무지개색 깃발에 착안한 신제품을 출시한다는 뉴스를 우연히 접했다. 역시 레고! 새로 출시될 제품은 이름도 멋지다. '모두가 멋져요 (Everyone is Awesome)'다. 회사는 레고 놀이가 인종, 성별, 자기 정체성, 취향 등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며 신제품 출시 이유를 설명했다. 맞다, 레고는 덴마크 회사다! 그리고 이제 곧 6월이다!

레고_무지개.jpg <이미지 출처 : 레고 홈페이지>

6월은 다양성이라는 무지개 깃발이 휘날리는 달이다.


성소수자 인권의 달(LGBTQ Pride Month). 1969년 6월 28일, 뉴욕에서 일어난 '스톤월 폭동'을 기념하는 세계적인 축제 기간이다. 1960년대 미국은 성 소수자를 단속하는 것이 합법이었다. 극소수의 술집만이 동성애자 입장을 허용하였고, 스톤월 인(Stonewall Inn)도 성 소수자를 포함해 가난한 사람, 노숙자를 차별 없이 받는 술집이었다. 자유와 인권을 갈망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다. 이런 상황이니 점차 경찰도 스톤월 인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체포하려는 경찰과 성 소수자 인권을 보장하라는 군중이 대치하면서 시위가 일주일간 이어진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성 소수자 인권 보호 운동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차별법 폐지를 이끌어내게 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LGBTQ는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와 퀴어의 첫 글자를 따 성 소수자를 일컫는 말이다. 폭동 다음 해인 1970년부터 LGBTQ Pride Month가 시작되었다. 6월 한 달간 평화 시위를 비롯해 각종 문화 행사를 진행하는 페스티벌(축제)로 확장되었다. 왜 이런 행사를 Pride라고 부르는지 궁금했다. 성 소수자의 자부심, 긍지를 높이자는 의미에서 유래되었을까? 그렇게 오해(?)할만한 여지는 있지만, 사실은 양성애자 운동가인 브렌다 하워드(Brenda Howard)의 별명 '긍지의 어머니(Mother of Pride)'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하워드는 스톤월 폭동 1주년을 기념하는 첫 번째 퍼레이드(게이 퍼레이드)를 기획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무지개 (무지개 깃발)는 언제부터 성 소수자의 상징이 되었을까? 1978년 예술가 겸 디자이너인 길버트 베이커가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인 하비 버나드 밀크의 요청으로 디자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밀크는 미국에서 시의원에 당선된 첫 커밍아웃 동성애자다. (그는 나중에 암살된다) 베이커 또한 활동적인 동성애자 인권 운동가로 미국 국기의 줄무늬와 성 소수자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무지개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을 완성했다는 설과 주디 갈런드가 부른 'Over the Rainbow'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설이 있다. 무지개 깃발은 1978년 6월 2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게이 프리덤 데이 퍼레이드에서 최초로 사용했다. 길버트 베이커가 디자인한 최초의 무지개 깃발은 8색으로 각 색깔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무지개깃발.jpg <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1979년부터 현재까지는 분홍색과 청록색이 제외되고 남색이 파란색으로 바뀌어 6색 (위쪽부터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보라) 무지개 깃발을 사용하고 있다.


6월이면 전 세계 거리에 무지개 깃발이 휘날린다. 레고뿐만 아니라 성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젠더와 가족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제품을 선보인 해즈브로(포테이토 헤드), 마텔(바비인형) 같은 장난감 회사들도 있다. 유튜브, 유나이티드 항공, HSBC, 로레알, 바나나리퍼블릭, 베르사체 등 셀 수 없이 많은 회사들이 자사의 브랜드나 기업 로고를 무지개 색으로 물들였다. 핑크 머니(성 소수자 구매)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고 의식 있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이미지도 제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퀴어문화축제조직위는 서울시의 차별적 행정에 분노해 시정을 요구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서울시가 퀴어문화축제조직위의 비영리 사단법인 설립 허가를 계속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한쪽 이야기만을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2021년 현재 우리 사회의 다양성 시계가 1969년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의 작은 술집을 둘러싼 뉴욕 경찰의 시간에 맞춰져 있는 게 아닐지 조금 걱정이다.


'하늘 아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고 믿는다. '역사는 소수에서 다수로, 강자에서 약자로 힘이 분산되는 과정'이며 이것이 역사의 진보라고 생각한다. 성별, 인종, 성적 취향 등이 차별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니, 차별은 어떤 이유에서든 부당하다. 우리 사회의 다양성 시계가 하루빨리 '현재'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세 번 읽는 그림책>에서 <파란 아이 이안>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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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작가님이 쓰고 그린 <파란 아이 이안>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세 번 읽어야 하는 그림책이다. 읽을수록 새로운 내용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좋은 그림책의 공통된 특징이다. 책을 다 읽고 덮으면 찐친과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 듯하다. 아쉬운 마음에 자연스레 다시 한번 책을 펼치게 하는 힘이 있다. 독자분들이 직접 읽어 보면 좋을 것 같아 전체 줄거리 소개는 하지 않는 편이지만, 인터넷 서점 책 소개란에 공개되는 정도로 줄거리를 요약해 보고자 한다. (줄거리를 알아도 작품을 감상하는데 지장이 없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다)

갓 태어난 이안의 얼굴에는 커다란 파란 점이 있다. 병원에 가도 파란 점이 생긴 이유를 알 수 없다. 엄마, 아빠의 근심은 깊어갔지만 평범하게, 건강하게 자라는 이안을 보며 안심한다. 이안이 유치원에 갈 무렵 자신의 얼굴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되고, 엄마로부터 사람마다 자기의 색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안은 파란색이 자기 색이라고 믿는다. 유치원에 간 이안은 파란색 물건은 모두 자기 것이라고 우기고 이로 인해 혼자 지내는 날이 많아진다. 그러던 어느 날 롱이라는 새로운 친구가 온다. 이 아이는 얼굴도 머리도 빨갛다. 두 사람은 언제나 꼭 붙어 다닌다.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리다 온통 파란색만 사용하는 이안의 그림에 롱이가 빨간색을 칠한다. 그런데 두 물감이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그러자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보라색, 자주색, 제비꽃색이 섞인다. 아이들이 함께 모여 마구 색칠한 하얀 종이는 무지개 색깔로 물든다. 이안은 파란 물감으로 자기 얼굴에 색칠한다. 아이들도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물감으로 얼굴에 색칠한다. 알록달록한 아이들이 함박웃음을 짓는다. 이안은 화장실로 달려가 물감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지웠는데 그때 파란 점도 감쪽 같이 사라진다.

이 작품은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의미를 담은 그림책이다. 인터넷 서점에 소개된 출판사 리뷰를 보면 '색깔 있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세상을 꿈꾸며', '우리 사회는 점점 다양화되고, 다문화 되어 가고 있다. 얼굴색뿐만 아니라 생각과 관점이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그들과 어우러져 살아갈 줄 아는 포용력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라고 설명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충분히 좋은 작품이다. 하지만 왠지 나는 이 작품에 '이스터 에그'가 숨어있다고 느꼈다. 꿈보다 해몽이고, 작가님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내가 발견한 이스터 에그를 살펴보겠다.


이안은 왜 얼굴에 파란 점을 가지고 태어났을까? 그림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안은 일반적인 가족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엄마들은 머리가 길다. 예외가 없다. 여성성, 모성이 긴 머리로 표현되었다. 유독 이안의 엄마만 짧은 머리다. 아빠와 별 차이가 없다. 나는 이것이 다른 형태, 즉 LGBTQ 가족임을 암시하는 것이 아닌지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물론 어디에도 이런 설명은 없다. 개인적인 해석일 뿐이다. 순수한 유치원 아이들은 이안에 대한 편견이 없다. 그저 이안이 파란색을 욕심내 싫을 뿐이다. 빨간색 롱이가 오면서 하나는 이제 둘이 된다. 그리고 아이들은 물감으로 신나게 장난치며 놀고 각자의 얼굴을 자기가 좋아하는 색으로 물들인다. 마침내 다양한 색깔의 얼굴들이 모여 무지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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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등장하는 엄마들은 하나같이 긴 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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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족, 핵가족만이 가족의 형태가 아니다. 오늘날 수많은 형태의 가족이 등장하고 있다>


(읽을 분들에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지만) 마지막에 왜 이안의 파란 점이 사라졌을까? 아마도 그건 이안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모두 각자가 좋아하는 색으로 얼굴을 물들였기에 파란 얼굴은 이제 특별하지 않다. 파란색은 남들과 다르지만 이제 무지개(다양성)가 되어 다 함께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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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아이 이안>은 그림, 내용, 의미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모처럼 만난 좋은 그림책이다. 아내가 감동적인 작품을 빌려왔다며 처음 내게 건넬 때는 그 깊은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언제쯤이면 아내처럼 좋은 그림책을 고르는 혜안을 갖게 될까? 아무리 노력해도 이번 생에서는 틀린 것 같다. 6월, 성소수자 인권의 달을 맞이해 아이들과 함께 읽기에 그만인 <파란 아이 이안>을 아내 덕분에 소개할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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