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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Sep 09. 2021

지상 최대의 쇼

한뼘소설

 P2P 대출회사 'Pooma-E'를 세계 일류 핀테크 기업으로 키워낸 K회장이 향년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수 백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그의 재산이 누구에게 상속될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법적 상속인으로 젊은 미망인과 다섯 명의 자녀, 열두 명의 손주가 있었지만, 그들에게 재산이 고스란히 상속될 거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엉뚱하고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K회장이 살아생전 수많은 기행(奇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항상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지상 최대의 쇼는 내가 죽는 순간 시작될 거야!"라고…. 


 유언 공개는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다. 이 역시 고인의 뜻이었다고 법률 대리인이 밝혔다. 공식적인 동시 접속자 수는 1억 명을 조금 웃돌았다. 세계 신기록이었다. 생중계로 공개된 유언 내용에 비하면 이런 기록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K회장의 유언은 간단했지만 모두를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특히 남겨진 가족들에게는 더욱. 그가 사재를 털어 만든 'Pooma-E Library'에 소장된 2천만 권이 넘는 책들 중 한 권에 그의 전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비밀열쇠'를 숨겨놓았다는 내용이었다. 국적,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비밀열쇠를 찾는 사람이 K회장의 전 재산을 상속받는 것이다. 기한은 3개월, 그 안에 아무도 비밀열쇠를 발견하지 못하면 K회장의 전 재산은 기후위기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전 세계 난민을 위해 쓰일 예정이라고 법률 대리인은 말했다. 


 'Pooma-E Library'가 있는 강원도 폐탄광촌은 하루아침에 북새통을 이루었다. 비밀열쇠가 담긴 책을 찾으려는 사람들로 도서관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의 행렬도 수십 킬로미터에 달했다. 30년 전, 책이 사라지는 현실이 안타까웠던 K회장은 세상에 얼마 남지 않은 종이책들을 한두 권씩 사모으기 시작했다. 책이 쌓이면서 보관할 곳이 필요했고 자연스레 도서관을 건립했다. 2050년 현재, 그의 도서관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사설 도서관이 되었다. 가장 많은 장서를 보유해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지상 10층, 지하 3층의 대규모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을 찾는 사람은 하루에 100명도 채 되지 않았다. 드물지만 여전히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을 이용했다. 종이책을 읽는 사람은 별종이었고 그나마 얼마 지도 않았다. 종이책만 소장한 'Pooma-E Library'에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건 당연했다. 유언 공개 후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정치인과 언론은 K회장의 괴팍한 행동을 두고 두 진영으로 나누어 싸움을 벌였다. 역대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성명을 통해 K회장의 죽음을 '지난 한 세기 동안 가장 유쾌한 장례식'이라며 지지했다. 2045년 노벨 문학상이 폐지된 이후 첫 공식 성명이었다. 겨우 명맥만 이어온 작가 협회, 문인 협회, 시인 협회 등도 지지 성명을 냈다. 발 빠른 크리에이터, 스트리머는 그가 생전에 남긴 저서, 공식 석상이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책이나 문장을 찾아 유튜브에 공개했다. 'K회장의 책'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하루에 수천 개씩 업로드되었다. 한 번은 '단독 보도, K회장의 서재에는 어떤 책이 있을까?'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올라왔다. 이 동영상은 단 몇 초만에 1억 뷰를 기록했다. 영상을 업로드 한 사람은 자신이 K회장의 대저택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사람이라고 밝혔다. 일부 음모론자들은 K회장의 유언은 '반환경적인 사기'라며 당장 책 읽기를 멈춰야 한다고 했다. 만약 이 일을 통해 책 읽기가 다시 일상에 침투하면 종이책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나무들이 베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적인 숏폼 콘텐츠 플랫폼 기업이 음모론자들의 배후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큰 충격을 주었다. 


 시간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3개월의 기한이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비밀열쇠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비밀열쇠의 존재에 대해 회의를 품었다. 독서를 좋아하던 한 괴짜 노인의 지독한 농담에 속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분 나빠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깨달았다. 비밀열쇠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고.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에서 해방되었고, 어느 때보다 많은 자유시간을 누렸다. 행복할 모든 조건을 갖추었는데 왠지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책에서 사람들은 실마리를 찾았다. 인류의 지식과, 지혜, 그리고 유모와 통찰력이 책에 담겨 있음을 발견했다. 가슴 한 구석이 텅 비어 있다고 느꼈는데 언제부턴가 그 빈 공간을 문장으로 채워나갔다. 이제 사람들은 비밀열쇠가 아니라 '자신과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책을 들었다. 사람들은 그것이 K회장의 유언이 당대에 남긴 진정한 의미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기한이 지난 다음 날 K회장의 법률 대리인은  'Pooma-E Library'에 들렀다. 국내 시집이라고 분류된 서가에서 시집 한 권을 뽑아 들었다.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이었다. 법률 대리인은 조심스럽게 시집을 펼쳤다. 그리고 그 안에서 황금으로 만든 '비밀열쇠'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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