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할아버지 선물 반품 사건, 그 후 1년.

크리스마스 그림책 (2)

by 조이홍

지난해 크리스마스, 산타할아버지께 받은 선물을 '반품'하겠다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더랬다.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은 둘째 아이의 도발이었다. (https://brunch.co.kr/@hsc0619/183#comment 참고!) 이제 5학년이나 되었으니 '지루한 연극'을 끝낼 때도 되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능청스러운 연기를 시전한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지난번 실망시킨 산타할아버지가 꼭 받고 싶어 하는 '그것(볼드모트냐고!)을' 선물로 주실 것 같다나…. 또 한 번 숨 막히는 두뇌 대결이 벌어질 판이다. 총성 없는 전쟁터!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이브가 이제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 12월이 시작되었다고, 기운 빠지는 뉴스만 가득한 세상에서 일부러라도 크리스마스 기분 좀 내자고 너스레를 떨었는데 시간은 한 입 머금은 솜사탕처럼 사르륵 빨리도 내빼더니, 연말이라고 기분이 들뜨기는커녕 여전히 물 먹은 솜처럼 축 쳐졌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꼬?


책 읽으라고 하면 만화책이 꽂힌 책장으로 쪼르륵 달려가곤 하던 둘째 아이가 웬일로 책장 앞에 앉더니 그림책을 다 읽는다. 어쩐 일인가 싶더니 책장에서 꺼내 수북하게 싸놓은 책들이 죄다 크리스마스 관련 그림책이다. 반은 산타할아버지 선물 이야기다. 우연이 아니라면 치밀하게 계산된 녀석의 계략임이 틀림없다. 못 본 척해야 할 것을, "웬일로 그림책을 다 읽어?" 먼저 나서 물었다. 나는 보았다. 녀석의 웃지 않는 듯하며 살짝 올라간 입꼬리를. 미끼를 덥석 물어버렸다. '안 본 눈 삽니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고 확신한 아이는 깔끔한 마무리 펀치를 날렸다. "아빠도 읽을래?" KO 직전 그로기 상태.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애당초 두 번으로 나누어 소개하려고 했던 <크리스마스 그림책>이나 어서 마무리해야겠다.


(이언 포크너 글·그림 / 서애경 옮김)

올리바아 시리즈는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그림책이다. 여행 갈 때나 집안일에 치여 정신없을 때, 우리를 대신해 아이들을 돌봐준 전능한 힘의 3할쯤은 올리비아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물론 대부분은 '뽀로로님과 그 친구들'일 테지만. <올리비아, 신나는 크리스마스>는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 꼬마 돼지 올리비아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이다. 남동생 이언과 막내 윌리엄도 귀엽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테지만, 무장색 패기보다 무서운 무한 상상력을 온몸에 두른 올리비아의 소녀소녀 감성을 따라갈 수는 없다.


크리스마스 준비로 한창 바쁘지만, 올리비아는 온종일 안절부절못한다.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초조함 때문이다. 아빠가 벽난로에 불을 지피려고 하지만, 그것도 못하게 말린다. 오라는 산타할아버지는 오지 않고 비만 내리니 올리비아 마음이 어떨지 짐작 간다. 어느덧 밤이 되어 잠을 청하지만 쉬이 잠들지 못한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아침, 쿵쾅거리며 계단을 내려오는 아이들은 트리 아래서 선물꾸러미를 발견한다. 마치 아이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우리 집도 십 년 이상 똑같은 광경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산타할아버지 선물은 몇 개는 별로였지만, 몇 개는 마음에 들었다. 이 대목에 밑줄을 쫙 치고 둘째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반격의 명분으로 충분했다. "봤지? 산타할아버지가 반드시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물을 두고 간다는 보장은 없어!"


아주 먼 옛날, 내가 둘째 아이보다 조금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산타할아버지가 오시지 않았다. 커다란 빨강 양말을 머리맡에 버젓이 걸고 잤는데 다음 날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크리스마스 아침 엉엉 울었더랬다. 그때는 아직 산타할아버지 존재를 믿던 나이였는데…. 그 이후로 산타할아버지 존재를 자연스럽게 믿지 않게 되었다. 알고 싶지 않은 진실과 마주쳤을 때 기분은 솔직히 정말 별로였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가능하면 오래도록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 선의(善意)가 이제는 총성 없는 전쟁이 되었으니 삶이란 참 아이러니하다!


(마리 홀 에츠, 오로라 라바스티다 글 / 마리 홀 에츠 그림)

산타할아버지도 크리스마스트리도, 심지어 흰 눈도 등장하지 않는 색다른 크리스마스 그림책도 있다. 바로 멕시코의 크리스마스 전통을 다른 <크리스마스까지 아홉 밤>이다. 빨간 옷을 입고 흰 수염이 덥수룩한 산타할아버지가 등장하지 않으니 왠지 무척 낯설었지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지구 저편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하나쯤 알아둔다고 나쁠 것도 없지 않은가.


유치원에 다니는 주인공 세시도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드디어 '포사다'를 하게 되었다. 포사다는 멕시코 크리스마스 축제로, 아홉 밤 전부터 크리스마스이브까지 매일 밤 열린다.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이 줄지어 노래 부르며 집 마당을 도는 전통 행사를 치르는데 아이들이 포사다를 기다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피냐타' 때문이다. 세시 역시 자신만의 첫 피냐타를 갖게 되어 기뻐 어쩔 줄 몰랐다. 피냐타는 종종 남미 영화에서 등장하는데 공이나 동물 모양으로 만든 점토 인형 안에 초콜릿이나 사탕, 젤리를 가득 채우고 눈을 가린 아이들이 긴 종이 막대기로 깨뜨리는 멕시코 전통 놀이다. 깨뜨려질 운명으로 태어난 피냐타지만, 세시는 자신의 첫 피냐타를 다른 아이들이 깨뜨리는 것이 몹시 못마땅하다. 간절히 기도하지만 그녀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크리스마스까지 아홉 밤>은 특별한 관심이 없다면 접하기 어려운 멕시코 크리스마스 전통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그림책이다.


(미야니시 타츠야 글·그림, 허경실 옮김)

다음 그림책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고 녀석 맛있겠다> 시리즈 중 하나로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이다. 이 작품 역시 크리스마스나 겨울과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눈 내리는 배경(아마도 빙하기)과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크리스마스와 잘 어울려 소개해 볼까 한다.


먼 옛날, 공룡이 살던 세상에 북쪽과 남쪽에 사는 공룡은 모습도, 색깔도, 언어도 달랐다. 골짜기에 눈이 내리고 매서운 바람이 불자 주인공 티라노사우루스도 따뜻한 살 곳을 찾아 계곡을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초록 숲에 도착한 티라노는 빨간 열매를 먹는 호말로케팔레 세 마리와 마주친다. “우적우적 다 먹어 주마!” 티라노는 군침을 흘리며 다가서지만, 웬일인지 세 마리는 도망가지 않는다. 호말로케팔레에게 ‘우적’이란 말은 친구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티라노는 그들을 한입에 꿀꺽 삼키려 하지만, 오히려 세 마리는 친구 입에서 신나게 뛰어논다. 결국 너무 활동적인 녀석들을 뱉어버린 티라노는 오래도록 굶은 탓에 쓰러지게 된다. 말을 이해하지는 못해도 티라노 배에서 들리는 꼬르륵 소리에 반응한 세 마리는 물고기며 조개, 빨간 열매를 구해와 허기를 달래준다. 그렇게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점점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진심이 통했기에. 그러던 어느 날, 티라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먹이를 찾아 초록 숲을 찾아온 알베르토사우루스에게 세 마리가 다가선다. 티라노와 같은 말을 사용하는 알베르토 역시 친구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알베르토는 세 마리를 사납게 물고, 그 순간 티라노가 돌아온다. 티라노는 알베르토로부터 친구들을 구할 수 있을까? 유아, 아동용 그림책 치고는 결말이 다소 충격적이지만, 좋은 친구가 되는데 외적 조건(언어, 외모 등)은 중요하지 않다는 작품의 메시지는 곱씹어볼 만하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한다면 우린 이미 서로에게 소중한 친구야!” <고 녀석> 시리즈는 이종(異種) 간의 관계나 이를 통해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라는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인데 아이들이 읽어도 어렵게 느끼지 않으니 이번 기회에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존 로코, 이충호 옮김)

겨울이니 '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누구나 눈에 관한 추억 한두 가지쯤 있을 테니. '골 때리는 그녀들'이라는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니 이제 군대 이야기, 축구 이야기,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가 여성들이 싫어하는 '이야기 3종 세트'는 더 이상 아닐 듯싶다. 평소 TV를 잘 보지 않는 아내와 나도 이 프로그램만큼은 열렬히 시청한다. 하지만 군대에서 눈 치운 이야기라면 어떨까? 2m가량 내린 눈으로 전역 일주일 남겨두고 제설 작업만 실컷 하고 나왔다고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 2m나 되는 엄청난 눈이 내린 적이 있는가 궁금증이 생기는 건 이해했다. 1997년, 강원도 인제에는 억수로 눈이 내렸다. 아내조차 내 말을 믿어 주지 않으니 억울했다. 전우들아 어디 있느뇨?


<폭설> 작가 존 로코는 현명했다.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그림책으로 완성했으니 말이다.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이렇게 부러웠던 적도 없었다. 1m 넘게 눈이 쌓여 마을이 고립되었지만, 아이들은 마냥 신나기만 하다. 눈 속에 굴을 파고 비밀의 방도 만든다.(이거 군대에서 해봤다) 며칠이 지나도 제설차가 오지 않자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집에 먹을거리도 떨어졌다. 모두가 걱정만 하고 있을 때 아이는 꾀를 낸다. 테니스 라켓으로 설피를 만들어 동네 슈퍼마켓까지 대장정의 길에 오른다. 심지어 이웃집 부탁까지 들어주는 대범함을 선보인다. 과연 아이는 대장정을 성공리에 마치게 될까?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왠지 뜨거운 우유를 듬뿍 넣은 핫초코 생각이 간절해진다. 눈 내리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핫초코 한 잔 마시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CF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눈 내리면 마음이 들뜨지만 예전만큼 즐겁지는 않다. 도로가 얼면 어쩌나, 차가 지저분해지겠군 등등 현실적인 걱정이 앞서니 말이다. 노심(老心)이 동심(童心)을 추월하려고 할 때마다 예방 주사가 필요하다. 그럴 때는 그림책이 딱이다. 이보다 좋은 백신은 없다. 물론 노심은 관용이자, 중용이기도 하니 너무 잦은 백신은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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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크리스마스 그림책 3종 세트)

<산타할아버지> (레이먼드 브릭스 글·그림 / 박상희 옮김), <크리스마스트리> (미셸 게 글·그림 / 강경화 옮김),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부탁해> (힐러리 로빈슨 글, 맨디 스탠리 그림) 세 작품 모두 아이들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크리스마스를 위한 그림책이다. <산타할아버지>의 주인공 산타할아버지는 우리가 익히 아는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다. 왠지 뾰족하다. 심드렁하기도 하고 선물 배달이 귀찮아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전 세계 아이들을 위해 눈보라와 비바람을 뚫고 하루 만에 선물을 배달한다. 츤데레 같은 산타할아버지에 '풋' 하고 웃음이 나오는 작품이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영유아를 위한 그림책이라 할만하다. 별다른 스토리 라인이 없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준비하는 아이와 귀여운 아기 고양이 세 마리가 전부인 작품이다. 너무 시시하다 싶다가도 아이들 눈에는 이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도 없겠다 싶다. '동물과 어린아이를 잘 표현하는 작가'라는 소개와 정확히 들어맞는 작품이다. 눈 덮인 마을, 크리스마스트리, 그리고 아기 고양이 세 마리면 이미 특별한 크리스마스가 아니겠는가!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부탁해>는 크리스마스가 단지 '선물 받는 날'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베풀(줄) 수 있는 날'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스토리 라인 역시 간단해 귀여운 유치원 아이들이 양로원을 찾아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이야기가 전부이다. 연말이니까 '나눔'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로 삼으면 좋겠다 싶어 소개했다. 나눔은 가진 것이 많아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평생 폐지를 모아 번 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는 분들의 이야기에 감탄만 해서는 안 된다. 일 년에 딱 한 번이라도 소외된 이웃을 생각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한 번도 생각하지 않는 것보다는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해주지 않을까? 코로나로 그 마음마저 꺼버리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하야시 기린 글, 쇼노 나오코 그림 / 고향옥 옮김)

마지막으로 소개할 <이 세상 최고의 딸기>는 올 크리스마스이브에 둘째 아이에게 읽어줄 요량으로 고른 그림책이다. 받는 '선물'의 의미를 되새겨 볼만한 작품이자, 산타할아버지 선물 전쟁을 끝낼 내 마지막 카드이다.


어느 날 북극곰에게 편지 한 통이 전달된다. 발신인이 없는 짧은 편지였다. "딸기를 보내드릴게요." 북극곰은 딸기가 무엇인지 가만히 생각한다. 딱 한 번 멀리서 본 기억이 났다. 그 딸기가 정말 우리 집에 온다고? 북극곰은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딸기를 맞을 준비를 하고, 딸기와 함께 할 수많은 일을 계획한다. 그리고 마침내, 딸기가 도착했다. 북극곰은 세상에 딱 하나뿐인 자신의 딸기를 보고 어쩔 줄 몰라한다. 바라보고 춤추고 바라보고 춤춘다. 너무 아까워 먹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다음 겨울에도, 그다음 겨울에도, 매년 겨울 북극곰에게 딸기가 전해진다. 처음에는 한 알이었는데 양이 점점 늘어난다. 눈부시게 빛나는 딸기는 달콤한 향이 폴폴 나고 모양도 예쁘기 그지없다. 딸기 케이크에 파이까지 만들어 먹어도 많이 남는다. 문득 북극곰은 깨닫게 된다. 딸기가 많아질수록 기쁨이 줄어든다는 것을. 누군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딸기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북극곰은 자신 있게 대답하리라. "처음 먹은 그 한 알."


둘째 아이가 <이 세상 최고의 딸기>를 읽어주는 아빠의 마음을 알아챈다면 산타할아버지는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 집에 다녀갈 것이다. 알아채지 못한다면? 글쎄, 아마도 크리스마스에 문해력 문제집을 아빠와 정답게 풀고 있지 않을까? 빨리 크리스마스이브가 왔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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