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9일, 정답이 아니라 질문을 찾아 떠날 차례입니다.
인간은 진리를 좇는다. 언제나 정답을 찾으려 애쓴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닐 터였다. 수렵·어로를 통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인류의 아주 먼 조상들은 불확실성의 시간을 보냈다. 운 좋게 무언가를 잡으면 배불리 먹고 그렇지 않으면 쫄쫄 굶어야 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오롯이 살아내야 한다는 순수한 욕망만이 가득한 세계였다. 얼핏 보면 위태위태한 삶이었지만 오히려 마음은 편했을지도 모른다. 삶의 의외성이 선사한 다이내믹함은 그들을 어린아이처럼 맑고 순수하게 만들었다. 있을지도 모르는 진리나 정답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치열하게 살아냈다. 이 기막힌 비밀을 알아챈 천재 PD 나영석은 '삼시 세끼'라는 세상에 없던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시청자의 큰 사랑을 받았다.
농경사회가 되고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이런 사정도 큰 변화를 겪었다. 씨앗을 뿌리면 싹이 돋고, 그 싹이 무럭무럭 자라 꽃을 피우면 곧 열매를 맺었다. 이제 언제 올지 모르는 사냥감을 무작정 기다리지 않아도 좋았다. 명확한 인과 관계에 익숙해졌고, 우리 뇌는 그런 경향성에 흠뻑 취했다. 갈수록 이성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뇌가 발달했고, 사회는 이에 발을 맞추었다. 곡식이 창고에 쌓이고 내일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인간은 진리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으며, 이에 합당한 결과를 낳는다는 단순하지만 심오한 사고에 익숙해진 인간에게 정답이 없는 질문은 존재해서는 안될 무엇이었다. 진리는 항상 저 너머에 있지만, 아직 우리가 찾지 못하는 것일 뿐, 언젠가는 꼭 찾게 되리란 희망을 품고 인간은, 우리의 뇌는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이어령 선생님의 <물음표의 비밀>이라는 수필을 읽었다. 원자시계 개념을 최초로 발견해 노벨상을 받은 '이지도어 아이작 라비'라는 물리학자를 통해 '질문의 중요성'에 관해 화두를 던져주는 글이었다. 라비는 어떻게 이토록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내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는 늘 이렇게 물으셨지요. 얘야, 오늘 공부 시간에는 선생님에게 무슨 질문을 했니?" 그는 이것이 바로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비결이라고 말했다. 매일 질문하는 습관. 우리에게 익숙한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씀 잘 들었어?"와는 결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에만 가도 선생님이 "궁금한 거 있으면 질문해 보세요." 하면 아이들이 서로 손을 들고 흔들어 대느라 바쁘다. 서로 질문하고 싶어 안달 날 지경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런 학생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 선생님의 똑같은 말씀에 고개 떨구기에 바쁘다. 시끌시끌하던 교실이 마치 정오의 사찰처럼 무척 고요해진다. 그토록 많은 질문을 품던 아이들은 다 어이로 사라졌을까? 누가 그 아이들을 납치라도 했단 말인가!
항상 정답이 있다고 믿으며 그 정답을 찾기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교육 현실에서는 학교보다 학원이 더 효율적이다. 학교는 아이들의 인성, 사회성(화), 공평하게 교육받을 권리 등을 고루 신경 써야 한다. 반면 학원은 오로지 성적이 잘 나오는데 집중한다. 부모님들이 비싼 사교육비를 아끼지 않고 학원에 보내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삶의 정답까지는 몰라도, 만약 그런 게 있다면, 교과 과정에서 원하는 정답을 찾아주기에 학원만 한 곳은 없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이미 몇 조에 달하는 사교육 시장은 천장을 모르고 계속 성장하고 있다. 반 강제적으로 정답 찾기 전문가가 된 아이들은 이제 정답이 없는 질문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아니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삶에 정답 따위는 없다. 차라리 모범 답안 같은 것이라도 있고, 학원에서 이를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때도 많다. 정답 찾기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사회에 발을 디디면 마치 나침반을 잃은 여행자처럼 헤매고 당황하게 된다. 하지만 부모도, 학원도 도와줄 방법이 없다. 애초에 정답이란 없으니까. 고작 해줄 수 있는 말이란 '아프니까 청춘이야.' 뿐이다.
바꿔 말하면 내가 가는 길이 정답이 되는 셈이다. 그냥 가고자 하는 길을 묵묵하게 걸어가면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을 믿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 늘 누군가 가르쳐준 정답 찾기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럼 어떡하냐고? 질문해야 한다. 익숙한 것, 알고 있는 것에 안주하지 말고 물어야 한다. 틀린 질문이란 없다. 애초에 답이 없으므로 질문은 그 자체로 순수하다. 정답 찾기에 길들여진 뇌를 질문 하기에 적합한 뇌로 탈바꿈해야 한다. 그것이 삶이라는 기나긴 여정에서 길을 잃지 않고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요즘 청춘들은 아프고 힘들다. 사회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참 면목이 없다. 길을 가다 보면 막다른 골목이 나올 수도 있고 장애물을 만날 때도 있다. 그게 인생이다. 정답이 있다는 환상은 버리고 그 길마저 '나다움'으로 터벅터벅 걸어가야 한다. 그러므로 더 이상 있지도 않은 정답을 찾아 헤매지 않기를, 이제는 질문을 찾아 길을 나서기를 바란다.
(이미지 출처 : Pixabay)